史?
VOLUME I · LESSON 02

역사 탐구의 절차와 방법

"누가, 언제, 왜 적었을까?" 사료를 마주한 역사가의 첫 물음이다. 문자와 비문자, 두 갈래의 사료를 만나고 — 질문에서 시작해 해석에 이르는 다섯 단계를 익힌다.

ACHIEVEMENT GOAL 학습 목표
9역01-02다양한 자료와 사례를 통해 역사 탐구 방법을 익힌다. 문자·비문자 사료의 종류와 특징을 이해하고, 자료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토대로 논쟁을 경험한다.
SECTION · 01

사료의 두 갈래 — 글로 남긴 것, 다른 방식으로 남긴 것

"사료(史料)"는 역사를 만드는 재료다.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글자로 적었고, 어떤 사람은 그림·물건·소리로 남겼다. 둘 모두 그 시대를 알려주는 단서다.

SOURCE · A

문자 사료

글로 적힌 자료. 사람의 말과 생각, 사건의 순서까지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지만 — 적은 사람의 입장이 강하게 들어간다.

실록일기편지금석문고문서
SOURCE · B

비문자 사료

글이 아닌 모든 것. 그림·유물·벽화·사진·영상·구술·소리. 글로 적히지 못한 평범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침묵의 증언이다.

유물그림지도사진구술

두 종류 모두 한쪽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임진왜란을 알려면 이순신의 일기(문자)도 보지만, 거북선이 그려진 동시대 그림(비문자)도 함께 본다. 글로만 보면 놓치는 모습이, 그림에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SECTION · 02 · 문자 사료

글로 남긴 시간 — 문자 사료 셋

국가가 공식적으로 적은 실록부터, 전쟁터의 장수가 한밤중 쓴 일기, 거대한 돌에 새긴 비문까지. 글의 형태는 달라도 모두 시간을 묶어둔 단서다.

문자 사료를 읽을 때는 늘 묻는다. 누가 적었는가? 언제 적었는가? 적었는가? 같은 임진왜란이라도 일본 측 기록, 명나라 측 기록, 조선 양반의 일기, 평민의 구술이 모두 다르다. 한 문서가 곧 진실이 아니라, 여러 문서가 겹쳐질 때 진실에 가까워진다.

SECTION · 03 · 비문자 사료

글 아닌 것이 들려주는 시간 — 비문자 사료 셋

평범한 농부, 어린이, 노예는 글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입은 옷, 다닌 학당, 사용한 그릇, 만든 무덤 벽화는 남아 있다. 비문자 사료는 그 침묵 속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비문자 사료는 누군가가 "써서" 남긴 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그저 살면서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거짓말이 적다. 반면 사연이나 이유를 알기 어렵다. 무용총의 사냥꾼들이 왜 사슴을 잡으러 갔는지, 그림은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문자와 비문자를 함께 읽어야 시대가 보인다.

SECTION · 04 · METHOD

역사 탐구의 다섯 단계

사료가 있다고 곧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질문에서 출발해 사료를 모으고, 견주어 보고, 해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과정을 거친다. 다섯 걸음으로 정리한다.

1
QUESTION
질문 만들기

"왜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등장했을까?" 좋은 탐구는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2
COLLECT
자료 수집

실록, 일기, 그림, 유물, 디지털 아카이브 — 질문에 답할 만한 사료를 폭넓게 모은다.

3
ANALYZE
분석·비판

누가·언제·왜 만들었나? 믿을 만한가? 다른 사료와 일치하나?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토.

4
INTERPRET
해석·판단

증거를 종합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만든다. 한 가지 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한다.

5
SHARE
표현·소통

글·발표·영상·전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을 나누고, 다른 해석과 논쟁한다.

탐구 도구 — 무엇을 어떻게 쓸까

교육과정이 권하는 학습의 기본 도구:

  • 역사지도 ·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공간을 본다 (예: 고구려·백제·신라의 영역 변화).
  • 연표 · 사건들의 순서와 동시대성을 본다 (예: 3·1 운동과 5·4 운동의 관계).
  • 역사사전 / 백과사전 · 낯선 인물·용어의 기본 정보를 본다.
  • 디지털 아카이브 · 국가기록원, 우리역사넷, 박물관 공공 누리집의 1차 자료를 본다.
SECTION · 05 · CASE STUDY

하나의 사료, 두 가지 해석 —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

"같은 사료를 같은 시대 사람도 다르게 읽는다." 1880년대 발견된 한 비석의 한 줄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100년 넘게 다른 해석을 내놓은 사례를 본다.

CASE · 신묘년 기사

"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

광개토대왕릉비 미즈타니 탁본
미즈타니 탁본 (19세기) 일본 학자 미즈타니 데이지로가 소장·연구한 원석탁본 계열로, 비면에 석회를 바르기 전에 떠낸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이것을 어떻게 채워 읽느냐가 해석 차이의 원인이 된다.
같은 비석, 다른 읽기

비석의 한 줄에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몇 개 있다. 이 빈칸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 학자의 해석
"왜(倭)가 391년 바다를 건너 백제·임나·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 →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한국 학자의 해석
주어는 왜가 아니라 고구려다. "고구려가 391년 바다를 건너 백제를 깨뜨리고…" → 비석의 주인공이 광개토대왕이라는 점이 결정적 근거.

같은 글자에서 출발했지만 맥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처음 알려진 탁본이 글자 윤곽을 손으로 덧그린 것이라는 점까지 더해, 이 한 줄은 지금도 논쟁 중이다. 역사 해석에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

SECTION · 06 · DEBATE

미니 논쟁 — 나는 어느 쪽 읽기를 지지하는가

읽기만 해서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한쪽에 서서 근거를 대고, 반대쪽이 던질 반론에 답해 본다. 역사가가 실제로 하는 일이 이것이다.

논쟁의 초점 · 다투는 것은 "왜가 한반도를 지배했는가"가 아니다. 그 주장은 오늘날 두 나라 학계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근거 6). 여기서 다루는 것은 비문 한 줄의 주어를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이다.
STEP 1 · 근거 사료 살펴보기
EVIDENCE 1
비석을 세운 사람

이 비는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려고 세웠다. 비문 전체가 고구려 왕이 이룬 일을 적은 글이다.

EVIDENCE 2
세상에 처음 알려진 본

1883년 일본 육군 장교 사코 가게노부가 가져온 탁본이 최초로 알려진 본이다. 글자 윤곽을 손으로 덧그린 방식이라 원래 글자와 다를 수 있다.

EVIDENCE 3
변조 논쟁

1972년 이진희는 비면에 석회를 발라 글자를 고쳤다고 주장했다. 1984년 중국 학자 왕건군은 석회가 탁본을 잘 뜨려고 현지 사람이 바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늘날에는 조직적으로 글자를 고쳤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VIDENCE 4
끊어 읽기

1955년 정인보는 한문 문장을 다르게 끊어 읽었다. 그 결과 바다를 건넌 주체를 왜가 아니라 고구려로 보았다. 다만 앞뒤 문장과 어색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EVIDENCE 5
다른 사료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397년(아신왕 6년) 백제가 태자 전지를 왜에 볼모로 보냈다고 적혀 있다. 백제와 왜가 손을 잡았다는 기록이지, 왜가 백제를 신하로 삼았다는 기록은 아니다.

EVIDENCE 6
지금의 학계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두 나라 연구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통치 기관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

STEP 2 · 내 입장 고르기
상대편이 던질 반론
이 비는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적은 글이다(근거 1). 그런데 왜의 승리를 굳이 여기에 적을 까닭이 있을까? 게다가 이 문장이 처음 알려진 본은 손으로 덧그린 탁본이었다(근거 2). — 여기에 어떻게 답할지 아래에 써 보자.
상대편이 던질 반론
글자를 고쳤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근거 3). 끊어 읽기를 바꾸면 앞뒤 문장이 어색해진다는 지적도 있다(근거 4). 또 397년 기록을 보면 왜가 그 무렵 한반도 일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다(근거 5). — 여기에 어떻게 답할지 아래에 써 보자.
STEP 3 · 주장 · 근거 · 반론에 답하기
"나는 ○쪽 읽기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한 문장으로 쓴다.
위 근거 카드 번호를 적고, 그것이 왜 내 주장을 받쳐 주는지 쓴다. 두 개 이상이면 더 좋다.
위에 뜬 반론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지 쓴다.
정답이 정해진 활동이 아니다. 채점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논증
입장
주장
근거
반론에 대한 답

모둠에서 해 보기

  • 같은 입장끼리 모여 가장 센 근거 두 개를 고른다. 왜 그것이 센지 말로 설명한다.
  • 반대 입장 모둠과 만나 주장 → 반론 → 답변 순서로 한 번씩 주고받는다.
  • 끝나고 이렇게 묻는다. "상대 근거 가운데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나?" 생각이 바뀐 지점을 적는 것이 이 활동의 목표다.
SECTION · 07 · INTERACTIVE

사료 비판 —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아래 세 사료를 마주했다고 가정합니다. 각 상황에서 역사가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비판적 질문은 무엇일까요?

방법 · 각 사례에서 가장 알맞은 답을 하나 고르세요. 정답을 누르면 해설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종합 평가가 표시됩니다.
Q1.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을 보고 있습니다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왔다"고 적힌 듯한 부분이 보입니다.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정답 맞아요. 사료에 다가갈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이 자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입니다. 신묘년 기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883년 일본 육군 장교 사코 가게노부가 가져온 탁본(글자 윤곽을 손으로 덧그린 쌍구가묵본 계열)을 통해서였고, 그 과정에서 글자가 변형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석 논쟁이 시작됐어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사료를 만난 첫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나 비교가 아니라, 그 자료 자체가 어떤 손을 거쳐 왔는가를 따져보는 일입니다.
Q2.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펼쳤습니다
"오늘 적선 30척을 격파하고 100여 명을 사로잡았다." 이 한 줄을 읽고 주의해야 할 점은?
정답 맞아요. 일기는 가장 생생하지만, 가장 주관적인 사료이기도 해요. 본인에게 유리하거나 기억에 의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다른 시각의 사료와 교차 검증이 필요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순신은 신뢰할 만한 인물이지만, 일기라는 형식 자체가 한 사람의 시점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역사 비판의 첫 원칙은 "어떤 사료도 단독으로 진실이 되지 않는다"입니다.
Q3. 김홍도 「서당」 그림을 분석하려 합니다
우는 아이, 회초리를 든 훈장이 보입니다. 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해야 할 것은?
정답 맞아요. 풍속화는 화가의 선택과 시선이 담긴 자료입니다. 김홍도가 양반 시점에서 그렸는지, 평민의 일상을 우호적으로 보았는지 — 작가의 위치와 시대 분위기를 함께 살펴야 그림이 보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림도 사료의 한 종류일 뿐,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에요. 화가의 의도와 그림이 그려진 맥락을 빼놓고 보면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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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 08 · SUMMARY

한눈에 정리

오늘 배운 것

  • 사료는 문자 사료(실록·일기·편지·금석문)와 비문자 사료(유물·그림·지도·사진·구술)로 나뉜다. 두 갈래는 서로 보완한다.
  • 역사 탐구는 다섯 단계 — 질문 → 수집 → 분석 → 해석 → 소통 — 으로 이루어진다.
  • 사료를 마주할 때는 늘 "누가, 언제, 왜 만들었나"를 묻는다. 단독으로 진실이 되는 사료는 없다.
  • 같은 사료도 해석은 여러 갈래일 수 있다 (예: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 그래서 역사는 곧 논쟁의 학문이다.
  • 논쟁에 참여할 때는 주장 → 근거 → 반론에 대한 답의 순서로 말한다. 상대 근거 가운데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것도 실력이다.
  • 도구: 역사지도·연표·역사사전·디지털 아카이브 — 학습자의 무기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