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에서 통일로 — 중국의 첫 제국들
주나라가 약해지자 약 550년 동안 수많은 나라가 다투었다(춘추전국시대). 이 혼란 속에서 사상가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진시황이 모든 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진(秦) 시황제 · B.C. 221 ~ B.C. 206
약 550년 분열을 끝낸 진왕 정(政)은 자신을 "시황제(始皇帝)" — 첫 번째 황제라 불렀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펼쳤다.
화폐·도량형·문자(소전체)를 통일했고, 전국에 도로를 닦았다. 북방 흉노를 막기 위해 기존 성벽들을 이어 만리장성을 쌓았다. 자신의 무덤을 지키도록 실물 크기의 흙 병사 8,000개를 묻었다 — 병마용이다.
그러나 진은 너무 가혹했다. 책을 불태우고(분서) 학자를 묻었으며(갱유), 백성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시황제가 죽고 15년 만에 진은 무너졌다. 최초의 통일이 곧 최단명 왕조가 된 셈이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한(漢) 무제 · B.C. 141 ~ B.C. 87
진의 폭정에 분노한 농민 출신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B.C. 202), 그 뒤를 이은 무제(武帝)는 중국을 진정한 대국으로 만들었다. 동쪽으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서쪽으로 흉노를 토벌하며, 남쪽으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상이었다. 무제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관리를 뽑을 때 유교 경전 시험을 치게 했다. 이때부터 유교는 약 2,000년 동안 동아시아 정치·사회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무제는 장건을 서역에 보내 중앙아시아의 길을 열었다. 한나라의 비단이 로마까지 가고, 서역의 포도·호두·말이 중국에 들어왔다 — 비단길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공자, 『논어』 (춘추 시대, B.C. 6~5세기) · 한 무제 이후 동아시아 정치의 핵심 원리가 되다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
갠지스에서 데칸까지 — 인도의 두 왕조
인도는 산맥과 강으로 자연히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통일이 어려웠지만, 두 번의 큰 통일이 있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와 굽타 왕조의 찬드라굽타 2세 — 두 시기에 인도 문화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전쟁에서 자비로아소카 왕 · B.C. 268 ~ B.C. 232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세운 왕조는 손자 아소카 때 인도 대부분을 통일했다(B.C. 3세기). 그러나 아소카는 칼링가 정복 전쟁에서 10만 명이 죽는 참상을 보고 깊이 후회했다 — 그는 "진정한 정복은 다르마(법)에 의한 정복이다"라며 불교에 귀의했다.
아소카는 자비·불살생·종교적 관용을 새긴 석주를 인도 전역에 세웠다. 사르나트의 사자 석주는 오늘날 인도의 국장이 되었고, 그 사자 아래 새겨진 법륜(다르마차크라)은 인도 국기에도 들어 있다.
아소카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스리랑카에 보내 불교를 전파했다. 이때부터 불교가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국·한국·일본으로 퍼져나가는 "세계 종교화"가 시작되었다.
인도 문화의 황금기굽타 왕조 · 4~6세기
마우리아 이후 분열되었던 인도를 다시 통일한 굽타 왕조 시기에는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산스크리트 문학(시인 칼리다사), 수학(0의 발견, 10진법, 소위 "아라비아 숫자"가 실은 인도 숫자), 천문학이 모두 이 시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특이한 점은 힌두교가 종교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굽타 왕들은 불교를 보호하면서도 자신들은 비슈누·시바를 숭배했고, 이때부터 인도는 점차 힌두교의 나라가 되어갔다. 그러나 불교 미술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 아잔타 동굴 벽화가 그 증거다.
또한 이 시기에 카스트 제도가 더욱 굳어졌다. 출생에 따라 정해진 신분 — 브라만(사제) · 크샤트리아(왕족·전사) · 바이샤(상인·농민) · 수드라(노예) — 는 오늘까지 인도 사회에 남아있다.
세 사상, 세 길 — 유교·불교·힌두교
B.C. 6~5세기, 동시대 동아시아·인도에서 세계를 바꾸는 세 사상이 등장했다. 공자의 유교, 부처의 불교, 그리고 후일 형성되는 힌두교. 셋은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교
불교
힌두교
서로 만난 사상들간다라 미술과 종교의 길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서북부까지 진군한 후, 그 지역(현재 파키스탄 북부)에서는 그리스 조각 양식과 인도 불교가 만났다. 그 결과가 간다라 미술이다. 처음으로 사람의 모습을 한 부처상이 만들어졌고, 그 옷주름과 얼굴은 그리스 조각 그대로였다.
간다라 양식 부처상은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중국·한국·일본까지 전해졌다 — 우리가 절에서 보는 부처상의 머나먼 조상이 이 헬레니즘과 불교의 융합이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났을 때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나의 길로 이어진 세계 — 비단길
한 무제 때(B.C. 2세기) 본격 개통된 길은 로마에서 한나라까지를 잇는 약 6,400km의 동맥이 되었다. 비단·종이·불교·도자기·말·향료가 이 길을 따라 움직였다.
낙타가 짊어진 세계화의 첫 발자국
비단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물건만 오간 게 아니라 사람·기술·종교·예술·질병까지 함께 움직였다. 중국의 비단·종이·화약·나침반이 서양으로 갔고, 서역의 포도·호두·말·유리가 중국으로 왔다.
가장 큰 변화는 종교의 이동이었다. 인도의 불교가 비단길을 타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한국·일본에 전해졌다(약 1세기). 후일에는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 일부도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비단길에서 일어난 일들 — 시간 순으로 보기
- B.C. 139년 · 한 무제가 장건을 서역(중앙아시아)에 보내 길을 탐색.
- 1세기경 · 불교가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 전래.
- 2세기경 ·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중국에 들어옴.
- 610~907년 · 당나라 때 비단길의 전성기. 장안은 국제 도시였다.
- 13세기 · 몽골 제국이 비단길을 안정시켜 마르코 폴로 같은 유럽인이 동방을 방문.
탐구 활동 — 5문제 진위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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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정리
오늘 배운 것
- 진 — 시황제가 중국을 처음 통일. 중앙집권, 만리장성·병마용. 폭정으로 단명.
- 한 — 한 무제 때 전성기. 유교 국교화, 비단길 개통, 영토 확장(고조선 멸망).
- 마우리아 — 아소카 왕이 불교 귀의 후 인도 전역에 불교 전파. 동남아·중앙아시아·동아시아로 확산.
- 굽타 —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 산스크리트 문학, 0의 발견. 힌두교가 주류로.
- 3대 사상 — 유교(현세·도리), 불교(해탈·평등), 힌두교(윤회·다신).
- 비단길 — 한 무제가 본격 개통. 물건·기술·예술·종교가 함께 이동한 유라시아의 동맥.
- 문명의 이동은 단방향이 아니다 — 그리스 + 인도 = 간다라 미술처럼, 서로 만나면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