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I · LESSON 03

고대 동아시아·인도 세계의 형성

분열한 중국을 처음 하나로 묶은 진시황, 인도를 거의 통일하고 불교를 펼친 아소카, 그리고 한 사람의 깨달음에서 시작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넌 종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잇는 한 갈래의 길 — 비단길.

ACHIEVEMENT GOAL 학습 목표
9역02-03중국과 인도의 정치적 변화종교·사상 성립의 관계를 이해하고, 유라시아의 상호 교류를 탐색한다.
SECTION · 01

분열에서 통일로 — 중국의 첫 제국들

주나라가 약해지자 약 550년 동안 수많은 나라가 다투었다(춘추전국시대). 이 혼란 속에서 사상가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진시황이 모든 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진시황 병마용
진시황 병마용 B.C. 3세기 · 시안
만리장성
만리장성 진시황 이래 증축 · 약 21,000km
QIN · 진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진(秦) 시황제 · B.C. 221 ~ B.C. 206

약 550년 분열을 끝낸 진왕 정(政)은 자신을 "시황제(始皇帝)" — 첫 번째 황제라 불렀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펼쳤다.

화폐·도량형·문자(소전체)를 통일했고, 전국에 도로를 닦았다. 북방 흉노를 막기 위해 기존 성벽들을 이어 만리장성을 쌓았다. 자신의 무덤을 지키도록 실물 크기의 흙 병사 8,000개를 묻었다 — 병마용이다.

그러나 진은 너무 가혹했다. 책을 불태우고(분서) 학자를 묻었으며(갱유), 백성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시황제가 죽고 15년 만에 진은 무너졌다. 최초의 통일이 곧 최단명 왕조가 된 셈이다.

시황제중앙집권만리장성병마용분서갱유
HAN · 한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한(漢) 무제 · B.C. 141 ~ B.C. 87

진의 폭정에 분노한 농민 출신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B.C. 202), 그 뒤를 이은 무제(武帝)는 중국을 진정한 대국으로 만들었다. 동쪽으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서쪽으로 흉노를 토벌하며, 남쪽으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상이었다. 무제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관리를 뽑을 때 유교 경전 시험을 치게 했다. 이때부터 유교는 약 2,000년 동안 동아시아 정치·사회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무제는 장건을 서역에 보내 중앙아시아의 길을 열었다. 한나라의 비단이 로마까지 가고, 서역의 포도·호두·말이 중국에 들어왔다 — 비단길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무제유교 국교화장건비단길 개척고조선 정복
한 무제
한 무제 (유철) B.C. 141~87 재위 · 전한의 전성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
— 공자, 『논어』 (춘추 시대, B.C. 6~5세기) · 한 무제 이후 동아시아 정치의 핵심 원리가 되다
SECTION · 02

갠지스에서 데칸까지 — 인도의 두 왕조

인도는 산맥과 강으로 자연히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통일이 어려웠지만, 두 번의 큰 통일이 있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와 굽타 왕조의 찬드라굽타 2세 — 두 시기에 인도 문화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아소카 사자 석주
아소카 사자 석주 B.C. 3세기 · 오늘날 인도 국장
산치 대탑
산치 대탑 아소카 건립 · 부처의 사리를 모심
MAURYA · 마우리아

전쟁에서 자비로아소카 왕 · B.C. 268 ~ B.C. 232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세운 왕조는 손자 아소카 때 인도 대부분을 통일했다(B.C. 3세기). 그러나 아소카는 칼링가 정복 전쟁에서 10만 명이 죽는 참상을 보고 깊이 후회했다 — 그는 "진정한 정복은 다르마(법)에 의한 정복이다"라며 불교에 귀의했다.

아소카는 자비·불살생·종교적 관용을 새긴 석주를 인도 전역에 세웠다. 사르나트의 사자 석주는 오늘날 인도의 국장이 되었고, 그 사자 아래 새겨진 법륜(다르마차크라)은 인도 국기에도 들어 있다.

아소카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스리랑카에 보내 불교를 전파했다. 이때부터 불교가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국·한국·일본으로 퍼져나가는 "세계 종교화"가 시작되었다.

아소카칼링가 전쟁불교 귀의다르마 정책석주 칙령
GUPTA · 굽타

인도 문화의 황금기굽타 왕조 · 4~6세기

마우리아 이후 분열되었던 인도를 다시 통일한 굽타 왕조 시기에는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산스크리트 문학(시인 칼리다사), 수학(0의 발견, 10진법, 소위 "아라비아 숫자"가 실은 인도 숫자), 천문학이 모두 이 시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특이한 점은 힌두교가 종교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굽타 왕들은 불교를 보호하면서도 자신들은 비슈누·시바를 숭배했고, 이때부터 인도는 점차 힌두교의 나라가 되어갔다. 그러나 불교 미술은 이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 아잔타 동굴 벽화가 그 증거다.

또한 이 시기에 카스트 제도가 더욱 굳어졌다. 출생에 따라 정해진 신분 — 브라만(사제) · 크샤트리아(왕족·전사) · 바이샤(상인·농민) · 수드라(노예) — 는 오늘까지 인도 사회에 남아있다.

찬드라굽타 2세산스크리트 문학0의 발견힌두교 주류화카스트 제도
아잔타 동굴 보살
아잔타 동굴 파드마파니 보살 5세기 · 굽타 시대 불교 미술의 절정
SECTION · 03

세 사상, 세 길 — 유교·불교·힌두교

B.C. 6~5세기, 동시대 동아시아·인도에서 세계를 바꾸는 세 사상이 등장했다. 공자의 유교, 부처의 불교, 그리고 후일 형성되는 힌두교. 셋은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교

CONFUCIANISM · 중국
FOUNDER
공자(B.C. 551~479)
CORE
인(仁)·예(禮) — 사람다움
FOCUS
현세 · 사람 사이의 도리
SPREAD
한 무제 이후 동아시아 정치 사상
LEGACY
조선·일본·베트남까지 — 동아시아 문화의 뼈대

불교

BUDDHISM · 인도→세계
FOUNDER
고타마 싯다르타(B.C. 5세기)
CORE
사성제·팔정도 — 고통에서의 해탈
FOCUS
개인의 깨달음 · 카스트 부정
SPREAD
아소카 → 중앙아시아 → 동아시아
LEGACY
한국·중국·일본·동남아 — 세계 종교

힌두교

HINDUISM · 인도
FOUNDER
특정한 창시자 없음 · 점진적 형성
CORE
윤회·업보·해탈 · 다양한 신들
FOCUS
카스트 + 삶의 4단계
SPREAD
굽타 이후 인도의 주류 종교
LEGACY
오늘 인도 인구의 80% · 동남아 일부
간다라 좌불상
간다라 양식 좌불상 1~3세기 · 헬레니즘과 불교의 만남
힌두 사원
비루팍샤 힌두 사원 남인도 함피 · 시바 신을 모심
CULTURE · 문화 융합

서로 만난 사상들간다라 미술과 종교의 길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서북부까지 진군한 후, 그 지역(현재 파키스탄 북부)에서는 그리스 조각 양식과 인도 불교가 만났다. 그 결과가 간다라 미술이다. 처음으로 사람의 모습을 한 부처상이 만들어졌고, 그 옷주름과 얼굴은 그리스 조각 그대로였다.

간다라 양식 부처상은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중국·한국·일본까지 전해졌다 — 우리가 절에서 보는 부처상의 머나먼 조상이 이 헬레니즘과 불교의 융합이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났을 때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간다라 미술헬레니즘+불교인도→중앙아시아비단길 전파
SECTION · 04 · 유라시아 교류

하나의 길로 이어진 세계 — 비단길

한 무제 때(B.C. 2세기) 본격 개통된 길은 로마에서 한나라까지를 잇는 약 6,400km의 동맥이 되었다. 비단·종이·불교·도자기·말·향료가 이 길을 따라 움직였다.

비단길 낙타 대상
SILK ROAD · 비단길

낙타가 짊어진 세계화의 첫 발자국

비단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물건만 오간 게 아니라 사람·기술·종교·예술·질병까지 함께 움직였다. 중국의 비단·종이·화약·나침반이 서양으로 갔고, 서역의 포도·호두·말·유리가 중국으로 왔다.

가장 큰 변화는 종교의 이동이었다. 인도의 불교가 비단길을 타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한국·일본에 전해졌다(약 1세기). 후일에는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 일부도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주요 경유지 장안(현 시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페르시아 → 안티오크 → 콘스탄티노폴리스 → 로마. 카라반(낙타 대상)은 한 구간씩 맡았고, 중간 도시들은 무역의 중계지로 번영했다.

비단길에서 일어난 일들 — 시간 순으로 보기

  • B.C. 139년 · 한 무제가 장건을 서역(중앙아시아)에 보내 길을 탐색.
  • 1세기경 · 불교가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 전래.
  • 2세기경 ·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중국에 들어옴.
  • 610~907년 · 당나라 때 비단길의 전성기. 장안은 국제 도시였다.
  • 13세기 · 몽골 제국이 비단길을 안정시켜 마르코 폴로 같은 유럽인이 동방을 방문.
SECTION · 05 · INTERACTIVE

탐구 활동 — 5문제 진위 판정

다음 다섯 문장을 읽고 ○(맞음) 또는 ×(틀림)를 누르세요. 정답을 누르면 해설이 펼쳐집니다.

방법 · 각 문장에 ○/× 둘 중 하나를 선택. 정답을 맞히면 자동으로 다음 문제로 갑니다. 5문제를 모두 풀면 종합 결과가 나옵니다.
Q1
진시황은 통일 후 화폐·도량형·문자를 통일하고 비단길을 본격적으로 개통했다.
정답 ×진시황은 화폐·도량형·문자 통일은 했지만, 비단길을 본격 개통한 사람은 한 무제입니다(B.C. 139년 장건 파견). 진과 한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
Q2
한 무제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이로부터 약 2,000년간 유교가 동아시아 정치·사회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정답 ○한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를 국교화했습니다(B.C. 136). 이때부터 동아시아 관료를 뽑는 시험은 유교 경전이 중심이 되었지요.
Q3
아소카 왕은 칼링가 전쟁의 참혹함을 후회하며 불교에 귀의하고, 인도 전역에 다르마(법) 칙령을 새긴 석주를 세웠다.
정답 ○아소카의 회심은 인류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가 세운 석주 가운데 사르나트의 사자 기둥은 오늘날 인도의 국장이 되었어요.
Q4
간다라 미술은 중국 한나라 양식과 인도 불교가 만나 만들어진 융합 미술이다.
정답 ×간다라 미술은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진군 이후 그리스(헬레니즘) 양식과 인도 불교가 만나 형성된 미술입니다. 부처상의 옷주름·얼굴이 그리스 조각풍인 이유.
Q5
비단길은 물건뿐 아니라 종교·기술·예술까지 함께 움직인 길이며,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파된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정답 ○비단길은 흔히 무역로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세계화의 첫 동맥이었습니다. 불교의 전파, 종이·화약 같은 기술의 이동, 후일 흑사병의 전파까지 모두 이 길을 통해 일어났어요.
🎉 5문제 완료! 고대 동아시아·인도 세계의 정치·종교·교류가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 한눈에 잡혔다면 이 단원의 핵심을 잘 정리한 셈입니다.
SECTION · 06 · SUMMARY

한눈에 정리

오늘 배운 것

  • — 시황제가 중국을 처음 통일. 중앙집권, 만리장성·병마용. 폭정으로 단명.
  • — 한 무제 때 전성기. 유교 국교화, 비단길 개통, 영토 확장(고조선 멸망).
  • 마우리아 — 아소카 왕이 불교 귀의 후 인도 전역에 불교 전파. 동남아·중앙아시아·동아시아로 확산.
  • 굽타 —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 산스크리트 문학, 0의 발견. 힌두교가 주류로.
  • 3대 사상 — 유교(현세·도리), 불교(해탈·평등), 힌두교(윤회·다신).
  • 비단길 — 한 무제가 본격 개통. 물건·기술·예술·종교가 함께 이동한 유라시아의 동맥.
  • 문명의 이동은 단방향이 아니다 — 그리스 + 인도 = 간다라 미술처럼, 서로 만나면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