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II · UNIT VI · LESSON 01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

강화도 앞바다의 운요호 함포, 김옥균의 3일 천하, 전봉준의 녹두 깃발, 갑오개혁의 단발령. 30년 간 조선이 근대 국가가 되려는 격렬한 시도들 — 그리고 1910년의 비극.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13-01 개항·갑신정변·동학 농민 운동·갑오개혁·대한제국을 살펴보고, 근대 국가 수립 노력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한다.
SECTION · 01

개항 — 흥선대원군에서 강화도 조약까지

19세기 중반, 조선은 안과 밖에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안에서는 세도정치의 폐단, 밖에서는 서양 함선의 압박.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그 후의 강제 개항.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1820~1898)고종의 아버지. 1863~1873 섭정. 쇄국과 내정 개혁.
운요호
운요호 (1875)일본 군함이 강화도 침입 → 조약 강요의 빌미.
강화도 조약
강화도 조약 (1876)조선 최초의 근대 조약 — 그러나 불평등.

🔰 개항의 흐름 (1860년대~1876)

1863
고종 즉위 · 흥선대원군 섭정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흥선군의 아들이 12세에 즉위. 흥선대원군이 섭정.
1864~1873
흥선대원군의 내정 개혁과 쇄국
대내: 세도가 척결·서원 철폐(47개만 남김)·호포제(양반에게도 군포). 대외: 쇄국. 병인양요(1866·프랑스)·신미양요(1871·미국)로 양이 격퇴. 척화비 건립 — "양이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이라는 양자택일 거부.
1873
고종의 친정 시작
22세 고종이 직접 통치 시작. 흥선대원군 실각. 명성황후(민비)의 가족(여흥 민씨)이 권력 잡음.
1875.9
운요호 사건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 영해 침범 → 조선 포대가 발포 → 일본이 "이 사건을 빌미로 조약 체결을 강요".
1876.2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조선 최초의 근대 조약, 그러나 불평등 조약. ① 일본의 영사재판권(치외법권) ② 일본 화폐 유통 ③ 부산·원산·인천 3개 항구 개항 ④ 일본의 해안 측량권 — 조선의 주권이 크게 침해됨.
SECTION · 02

근대 개혁의 세 갈래 — 위로부터·아래로부터·다시 위로부터

개항 후 조선은 어떻게 근대 국가가 될 것인가? 세 가지 시도가 있었다. 갑신정변(개화파의 위로부터의 개혁), 동학 농민 운동(아래로부터의 변혁), 갑오개혁(다시 위로부터의 개혁). 모두 일정한 의의와 한계가 있었다.

김옥균
김옥균 (1851~1894)갑신정변의 주역 — 일본에서 망명 중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
전봉준
전봉준 (1855~1895)녹두장군. 동학 농민 운동 지도자. 1895년 사형.
동학 농민 혁명
동학 농민 혁명 기념관전봉준의 "사발통문"에서 시작된 1894년의 거대한 봉기.

📜 1884~1894 — 10년의 격동

1884.12.4
갑신정변 — 3일 천하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서재필의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 14개조 정강(신분제 폐지·내각제·청 사대 폐지). 그러나 3일 만에 청군에 진압. 김옥균은 일본 망명.
1894.1~5
동학 농민 운동 1차 (반봉건)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 황토현·황룡촌 전투 승리 → 전주성 점령. 정부와 전주 화약 체결, 농민이 집강소를 통해 자치 (12개 폐정 개혁안).
1894.7~12
청일 전쟁 + 동학 농민 운동 2차 (반외세)
조선 정부가 청에 도움 요청 → 일본도 텐진 조약 핑계로 출병 → 청일 전쟁(1894~95). 일본이 경복궁 점령. 동학 농민이 2차 봉기 — 일본 축출 목표. 공주 우금치 전투(11월)에서 일본 신무기에 대패. 전봉준 체포 → 1895년 처형.
1894.7~1896
갑오개혁 (2차 + 3차)
일본의 압력 하에 김홍집 내각이 추진. 군국기무처가 핵심 기구. 주요 개혁: 신분제 폐지·과거제 폐지·노비제 폐지·조혼 금지·연좌제 폐지·도량형 통일. 그러나 일본 의존도 너무 컸음.
1895.4
시모노세키 조약 · 삼국 간섭
청일 전쟁 결과 — 일본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고 요동반도를 일본에 할양. 그러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압박해 요동반도를 청에 돌려주게 함 → 조선 정부가 친러시아로 기울음.
1895.10.8
을미사변 — 명성황후 시해
친러 정책에 격분한 일본 공사 미우라가 낭인들을 동원해 경복궁에서 명성황후를 시해. 동아시아 외교 사상 유례없는 만행. 시신을 불태움.
1895.11
을미개혁 · 단발령
을미사변 후 친일 내각이 시행한 개혁. 단발령(상투를 자르라)·태양력·건양 연호. 그러나 단발령은 백성의 거센 반발 → 을미의병 전국에서 봉기.
1896.2
아관파천
고종이 일본을 두려워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1년간 머묾). 친일 내각 붕괴. 그러나 조선의 권위가 크게 손상.
SOURCE · 전봉준의 사발통문
1893년 11월 동학 교도들의 결의

"고부에 폐단을 끼치는 군수와 이방을 베어 죽이고, 군기와 양곡을 강탈하며, 전주성을 함락하고, 한양으로 진군하여 권귀(권문세족)를 없앤다.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 우리의 의(義)이다."

— 전봉준 등 20인이 작성한 사발통문 (1893)
DEEP DIVE ·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

"신분제 폐지의 시대"

1894년 갑오개혁은 한국사에서 가장 광범위한 개혁이었다. 단 몇 달 만에 다음이 모두 폐지·시행되었다:

  • 신분제 폐지 — 양반·중인·상민·천민 구분 폐지. 한국사 1,500년의 신분제 끝.
  • 노비제 폐지 —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
  • 과거제 폐지 — 시험으로 관료를 뽑던 1,000년 전통 끝.
  • 조혼 금지·연좌제 폐지 — 근대적 인권 보장.
  • 도량형 통일·은본위제 도입 — 근대적 경제 기반.
  • 독자 연호 사용(개국 503년) — 청 사대 종식.
"갑오개혁은 동학 농민 운동의 12개 폐정 개혁안과 많이 일치한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받아들인 사례. 그러나 동시에 일본이 청과 싸우는 동안 일본 입맛에 맞게 조선을 개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 갑오개혁에 대한 학계 평가

한계도 분명했다. 일본의 압력 하에 추진되었기 때문에 토지 개혁(가장 시급한 농민 요구)이 빠졌고, 일본인 고문이 내각을 좌우했다. 또 주로 위로부터 시행되어 백성의 호응이 약했다. 단발령이 그 대표적 예 — 좋은 의도였지만 강제로 시행하니 백성이 거센 반발.

SECTION · 03

대한제국 (1897~1910) — 마지막 13년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을 황제로 즉위시켰다. 광무개혁으로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군국기무처
군국기무처갑오개혁의 핵심 기구 — 약 200여 건의 개혁안을 처리.
고종
고종 황제 (재위 1863~1907)1897년 대한제국 선포, 황제로 즉위.
을미사변
을미사변 (1895)일본 낭인들의 명성황후 시해 — 침략의 만행.

👑 대한제국 13년 (1897~1910)

1896~1898
독립협회 — 만민공동회
서재필이 1896년 『독립신문』 창간 → 독립협회 결성. 만민공동회(1898) — 한국사 첫 대중 정치 집회. 신분 관계없이 누구나 연단에 올라 발언 가능. 그러나 고종이 해산.
1897.10
대한제국 선포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 거행.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 청과 일본·러시아 모두와 대등한 황제국임을 선언.
1897~1904
광무개혁
"구본신참(舊本新參)" — 옛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참고. 양전사업·지계 발급(근대적 토지 등기)·전화·전차·서양 의학교(제중원)·은행 설립.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 아쉬움.
1899
대한국 국제 반포
대한제국 헌법. 그러나 황제의 절대 권한(전제 군주제) 명시 — 입헌 군주제 시도가 좌절. 근대 국가의 한계.
1904~1905
러일 전쟁 · 한일 의정서
일본이 러시아를 격파(1904~05). 한일 의정서로 일본군이 한국 영토를 마음대로 사용. 그 후 제1차 한일 협약으로 일본인 고문이 한국 외교에 간섭.
1905.11.17
을사늑약 — 외교권 박탈
이토 히로부미가 강압 → 5명의 친일 대신(을사 5적 — 이완용·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이 서명.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 대한제국 13년이 사실상 끝남.
1907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 퇴위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보내 호소했으나, 일본 방해로 발표 못함. 일본이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 순종 즉위.
1910.8.29
국권 피탈 — 강제 병합
한일 병합 조약 — 대한제국 멸망, 일본의 식민지. 35년의 식민 통치 시작. 다음 단원에서 다룸.
SECTION · 04

인물·사건 매칭

6쌍의 인물/조약과 사건/특징을 매칭해 보자.

👥 인물·조약 ↔ 사건/특징 (6쌍)

0 / 6

왼쪽 인물/조약을 클릭한 뒤 오른쪽 특징을 클릭. 6쌍 매칭 후 정답 확인.

WHO/WHAT · 인물/조약
흥선대원군
김옥균
전봉준
갑오개혁
을사늑약(1905)
독립협회
WHAT · 사건/특징
외교권 박탈·통감부 설치·을사 5적 서명
쇄국 정책·서원 철폐·병인양요·신미양요
만민공동회·『독립신문』·서재필
동학 농민 운동 지도자·녹두장군·우금치 전투
갑신정변 3일 천하·14개조 정강·일본 망명
신분제·노비제·과거제 폐지·단발령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흥선대원군(1863~73 섭정): 내정 개혁 + 쇄국. 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 격퇴 후 척화비.
  • 강화도 조약(1876): 운요호 사건이 빌미. 조선 최초 근대 조약이지만 불평등 조약(영사재판권·해안 측량권 등).
  • 근대 개혁 3갈래: 갑신정변(1884·김옥균·3일 천하) + 동학 농민 운동(1894·전봉준·반봉건·반외세) + 갑오개혁(1894~96·신분제·노비제·과거제 폐지).
  • 을미사변(1895·명성황후 시해) → 단발령 → 을미의병 → 아관파천(1896).
  • 대한제국(1897~1910): 광무개혁·독립협회·만민공동회. 그러나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 박탈 → 1910 국권 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