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1 · MULTIPLE CHOICE
객관식 — 개념 확인 (5문항)
1
5점
정답 ③
왕건은 반대로 발해 유민들을 적극 포용했어요.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하자 발해 왕자 대광현 등을 왕족으로 우대. 이것이 신라 통일과 다른 고려 통일의 가장 큰 특징 — 진정한 민족 통합의 시도입니다.
2
5점
정답 ④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은 성종(981~997)의 업적이에요. 광종(949~975)은 노비안검법(956)·과거제(958) 등으로 호족을 약화시키는 직접적·강압적 정책을 취했지요. 성종이 그 뒤를 이어 유교 통치 체제를 완성합니다.
3
5점
정답 ④
반대예요. 김부식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진압한 인물입니다(1135). 묘청은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한 자주파였고, 김부식은 개경의 문벌 귀족·사대파 입장이었지요. 신채호는 이 대립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평했어요.
4
5점
정답 ③
공민왕의 4대 개혁: 친원파 숙청(기철 처형) + 쌍성총관부 회복(1356) + 관제·풍속 복원(몽골풍 청산) + 전민변정도감(신돈, 1366). 노비안검법은 광종,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 과전법은 1391년 신진사대부 — 모두 공민왕 사후의 사건입니다.
5
5점
정답 ④
반대예요. 의천이 천태종, 지눌이 조계종입니다. 의천(1055~1101)은 문종의 아들로 송 유학 후 천태종 창시 — 교종과 선종의 통합 시도. 지눌(1158~1210)은 무신정변기에 활동, 조계종 창시 — 오늘날 한국 불교의 주류. 정혜쌍수·돈오점수.
PART 02 · SHORT ANSWER
단답형 — 핵심 용어 (2문항)
6
5점
"국가에 경계의 난(무신정변) 이래로, 천한 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 많이 있었다.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우리만 도리어 채찍 아래 시달리며 살겠는가?"
정답 만적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봉기 모의(1198)는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신분 해방을 외친 사건입니다. 거사는 발각되어 처형되었지만, 그 사상은 조선 후기 평등 사상으로 이어집니다.
7
5점
1377년 · 청주 흥덕사 ·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 2001년 세계기록유산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위키미디어)
정답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 구텐베르크(1450년경)보다 78년 앞섭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PART 03 · ANALYSIS
자료 분석 — 사료 + 인물 (1문항)
8
10점
거란(요) 영토 — 만주와 화북을 차지한 거대 제국
위키미디어
사료: "우리나라(고려)는 곧 고구려의 옛 땅을 이어받은 나라이오.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했소. (…) 그대들이 만약 여진을 평정해 우리가 옛 땅을 회복하고 성을 쌓아 길을 통하게 되면, 어찌 사신을 보내지 않겠소?"
정답 ②
서희의 외교 담판(993)은 한국사 외교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거란의 80만 대군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거란의 진짜 목적(송 견제)을 꿰뚫어 본 외교적 통찰이 핵심.
서희가 사용한 외교 전략 3가지
- ① 명분 제공 — "고려는 고구려를 이어 평양에 도읍" (거란이 옛 땅 운운하는 것에 반박)
- ② 핑계 마련 — "여진이 막아서 송과 통할 수 없다" (실제 송과의 단교 약속 우회)
- ③ 보상 요구 — "강동 6주를 우리에게 주면 길이 열릴 것" → 영토 획득
PART 04 · ESSAY
서술형 — 비교·논술 (1문항)
9
15점
참고: ① 외세 이용 vs 자력 통일, ② 영토 범위(대동강 이남 vs 발해 유민 포용), ③ 패배국 처리(피정복 vs 평화적 항복·우대) 세 측면을 다루세요.
예시 답안 (200자)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은 세 측면에서 대비된다. 첫째, 외세 이용 vs 자력 통일. 신라는 당의 힘을 빌렸지만 고려는 자력으로 후삼국을 통합했다. 둘째, 영토. 신라는 대동강 이남에 그쳤지만 고려는 발해 유민까지 포용해 사실상의 민족 통합을 시도했다. 셋째, 패배국의 처리. 신라는 백제·고구려를 정복으로 무너뜨렸지만, 고려는 신라 경순왕을 사심관으로 우대하고 견훤도 망명을 받아주는 등 평화적 통합을 추구했다.
채점 기준
- 외세 이용 vs 자력 비교 — 5점
- 영토·발해 유민 비교 — 5점
- 패배국 처리 비교 — 5점
PART 05 · PERFORMANCE
수행평가 — 고려청자 카드뉴스 (1문항)
10
20점
🎒 미션
고려의 세계적 문화 유산 중 하나의 사례를 골라 카드뉴스 1장(A4 또는 슬라이드 1장)을 만든다. 다음을 모두 포함:
- 주제 선택 — 고려청자(상감) / 직지(금속활자) / 팔만대장경 / 수월관음도 / 「삼국유사」 중 하나
- 구체적 사실 — 시기·인물·기법·현 소장처 등
- 세계적 위상 —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떤 가치가 있는지
- 오늘날의 의미 — 우리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2~3문장)
📋 채점 기준 (20점)
| 항목 | 잘함 (5점) | 보통 (3점) | 미흡 (1점) |
|---|---|---|---|
| 역사적 정확성 | 시기·인물·기법 정확 | 핵심은 맞지만 일부 부정확 | 큰 오류 |
| 세계적 위상 | 다른 나라와 구체적 비교 | 비교 시도는 있음 | 비교 없음 |
| 오늘의 의미 | 현재의 관점에서 의미 있게 해석 | 의의 간단 언급 | 의의 누락 |
| 시각 표현 | 이미지·도식·색상이 효과적 | 구성 갖춤 | 가독성 낮음 |
제출 — 종이 인쇄 또는 디지털. 발표 1분 이내. 동료 평가 + 교사 평가.
비색의 470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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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470년 — 외세에 맞서고 청자를 빚어낸 시대를 마쳤습니다. 다음은 조선의 성립과 발전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