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과의 3차례 전쟁 — 서희와 강감찬
10세기 말, 만주에서 일어선 거란(요)이 송을 압박하다가 고려를 노렸다. 고려가 어떻게 외교와 전투로 거란을 격퇴했는지 — 서희와 강감찬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졌다.
⚔️ 3차례 거란 침입
서희의 외교 담판
거란의 1차 침입.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옴. 서희가 직접 적진에 가서 담판. "고려가 송과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강동 6주를 우리에게 주면 길이 열린다."
현종 피난·양규의 분투
거란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 통솔. 개경까지 함락당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 그러나 양규 등이 곳곳에서 분전 — 거란군이 보급 끊겨 퇴각.
강감찬의 귀주대첩
거란의 마지막 침입. 71세의 강감찬이 상원수로 출진. 흥화진에서 미리 강물을 막아 두었다가 풀어 거란군을 휩쓸고, 귀주에서 결정타. 거란군 1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뿐.
『고려사』 서희전
"우리나라(고려)는 곧 고구려의 옛 땅을 이어받은 나라이오.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했소. 그러니 만일 땅의 경계를 따진다면 그대들(거란)의 동경(요동)도 우리의 옛 땅이오. (…) 그대들이 만약 여진을 평정해 우리가 옛 땅을 회복하고 성을 쌓아 길을 통하게 되면, 어찌 사신을 보내지 않겠소?"
—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에게 한 말 (993)왜 거란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는데 그냥 돌아갔을까?
서희의 외교 담판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었다. 거란의 진짜 의도는 송을 치는 것이었고, 고려가 송과 단교하기만 하면 됐던 것. 서희는 이를 꿰뚫어 보고 "우리가 송과 통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여진 때문"이라는 명분을 제시 — 거란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동시에 강동 6주를 얻어냈다. 외교는 상대의 진짜 욕망을 읽는 것이라는 교과서적 사례.
여진과 몽골 — 새로운 거인들
거란이 약해진 자리에 여진(금)이 솟아올랐고, 100년 후 그 여진을 넘어 몽골이 세계 제국을 이룩했다. 고려는 다시 격동에 휘말렸다.
⚔️ 여진(금)과의 관계
⚔️ 몽골(원)의 침입과 강화 천도 (1231~1270)
"몽골의 말발굽이 바다는 건너지 못한다"
1232년 최우의 강화 천도는 단순한 피난이 아니었다. 몽골은 세계 제국이 되어가던 중이었지만, 유목민이라 바다 위 전투에 약했다. 강화도는 개경에서 가깝지만 좁은 해협(염하)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한 가지 지리적 사실이 30년 항전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강화 천도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몽골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자주적 의지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층은 강화도에서 안전하게 살면서 본토의 백성은 몽골에 짓밟히게 둔 무책임이기도 했다.
이런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처인성과 충주성의 승리다. 두 전투 모두 승려와 천민·노비가 주축이었다. 지배층이 강화에서 도피한 사이, 정작 몽골을 막아낸 것은 본토에 남은 '천한 사람들'이었다.
무신정변 — 100년의 무신 정권
1170년, 차별받던 무신들이 들고일어났다. 이후 100년간 무신들이 고려를 사실상 지배. 권력은 칼끝에서 나왔고, 노비들까지 신분 해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 무신정변과 그 후
『고려사절요』
"국가에 경계의 난(무신정변) 이래로, 천한 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 많이 있었다.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우리만 도리어 채찍 아래 시달리며 살겠는가? (…) 각자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운다면, 천민이 없어지고 모두 공경(公卿)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만적이 동료 노비들에게 한 말 (1198)만적의 말은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만적의 외침은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신분 해방을 외친 사건이다. 신라의 골품제, 고려 초의 문벌 귀족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무신정변 후 천한 무신들이 권력을 잡는 것을 보고, 노비들도 깨달은 것이다 — "신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구나."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 사상의 씨앗은 조선 후기 평등 사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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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거란(요) 침입에 서희(993·외교 담판·강동 6주) → 양규(1010) → 강감찬(1019·귀주대첩)으로 3차례 격퇴.
- 여진(금) 관계: 윤관의 별무반·동북 9성(1107) → 금 건국 후 사대 수용(1126).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은 김부식에게 진압.
- 몽골 침입(1231~) → 최우의 강화 천도(1232) + 30년 항전. 처인성·충주성에서 김윤후가 승려·천민과 함께 격퇴. 강화에서 팔만대장경 조성.
- 무신정변(1170 정중부) 후 100년 무신 정권. 최씨 정권 60년(1196~1258). 1198년 만적의 난 — 한국사 첫 신분 해방의 외침.
- 1270년 개경 환도. 삼별초가 진도·제주도로 옮겨 1273년까지 항쟁 — 자주성의 마지막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