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1 · MULTIPLE CHOICE
객관식 — 개념 확인 (5문항)
1
5점
정답 ④
나당 전쟁(670~676)에서 신라가 승리해 매소성·기벌포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했어요. 문무왕이 대동강 이남을 회복하며 자주적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당은 결국 평양 일대에서 철수했지요.
2
5점
정답 ④
신문왕은 반대로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했어요. 녹읍은 노동력까지 포함된 강력한 토지 제도였는데, 이를 없애고 토지만 지급하는 관료전으로 바꾼 것은 귀족의 경제·인적 기반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5점
정답 ③
발해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어요 — 무왕의 인안(仁安), 문왕의 대흥(大興), 선왕의 건흥(建興). 당의 책봉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자기 연호를 사용한 것은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4
5점
정답 ③
원효는 아미타 신앙으로 대중화, 의상은 화엄종·부석사를 담당. 혜초는 8세기에 당을 거쳐 인도까지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습니다. 1908년 둔황 막고굴에서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발견했지요.
5
5점
정답 ②
장보고는 828년 완도 청해진을 거점으로 신라·당·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무역을 장악했어요. ①은 반대(왕권 약화·진골 다툼), ③도 반대(원종·애노의 난 등 농민 봉기 폭발), ④도 헷갈리는 부분 — 견훤이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웠지요.
PART 02 · SHORT ANSWER
단답형 — 핵심 용어 (2문항)
6
5점
"고려(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 (…) 일본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노라."
정답 무왕 (대무예)
발해 2대 무왕(재위 719~737)이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발해가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분명히 한 결정적 증거로, 한국 사학계가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는 핵심 근거 중 하나입니다.
7
5점
경주 토함산 · 8세기 경덕왕 시기 · 김대성 창건
국립경주박물관 (위키미디어)
정답 석굴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고 전하는 인공 석굴 사원. 본존불의 비례가 1:√2:√3, 시선이 동지의 일출 방향(동남쪽 28도)을 향하는 정교한 설계로 유명합니다.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세계유산 등재.
PART 03 · ANALYSIS
자료 분석 — 지도 + 사료 (1문항)
8
10점
8세기 통일신라(남쪽)와 발해(북쪽) — 남북국 시대
위키미디어
참고 자료: 통일신라는 9주 5소경, 발해는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제를 갖추었다. 발해의 무왕은 일본에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자칭하고, 인안·대흥·건흥 등의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정답 ②
8세기는 한반도 남쪽에 통일신라(676~935), 북쪽 만주~연해주에 발해(698~926)가 공존한 남북국 시대입니다.
발해의 고구려 계승 증거 4가지
- 일본 외교 문서에서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자칭
- 독자 연호 사용 —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
- 연꽃무늬 와당·온돌·돌방무덤 등 고구려 양식 계승
- 지배층의 대부분이 고구려계 (왕 대씨, 귀족 고씨)
PART 04 · ESSAY
서술형 — 평가·논술 (1문항)
9
15점
참고: 의의 측면(자주적 통일·민족 통합의 시작·문화의 융합)과 한계 측면(외세 이용·대동강 이북 상실·동족 정복)을 모두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시 답안 (200자)
신라의 삼국 통일은 의의와 한계를 모두 가진다. 의의로는 첫째, 나당 전쟁에서 당을 몰아낸 자주적 통일이라는 점, 둘째, 9서당에 옛 고구려·백제인을 포함시킨 민족 통합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한계로는 첫째, 같은 민족인 백제·고구려를 외세(당)와 함께 친 것, 둘째, 대동강 이북 영토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30년 뒤 대조영이 발해를 세움으로써 영토적 한계는 일정 부분 보완되었다.
채점 기준
- 의의 2가지 이상 (자주·민족 통합·문화 융합) — 6점
- 한계 2가지 이상 (외세 이용·영토 축소·동족 정복) — 6점
- 발해와의 관계 언급 — 3점
PART 05 · PERFORMANCE
수행평가 — 가상 외교 문서 (1문항)
10
20점
🎒 미션
당신이 발해 무왕(대무예)이라고 가정. 일본 쇼무 천황에게 보낼 외교 문서를 직접 작성한다 — 300자 내외, 옛 한문투 또는 현대 한국어. 다음을 모두 포함:
- 발해의 정체성 — 누구의 후예임을 밝힐 것인가? (고구려·부여 언급)
- 외교 목적 — 왜 일본에 사신을 보내는가? (당·신라·일본의 국제 관계 고려)
- 발해의 자긍심 — 영토·문화·연호 등 자기 나라의 강점
- 일본과의 미래 —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
📋 채점 기준 (20점)
| 항목 | 잘함 (5점) | 보통 (3점) | 미흡 (1점) |
|---|---|---|---|
| 역사적 정확성 | 발해의 위치·인물·시기 정확 | 핵심은 맞지만 일부 부정확 | 큰 오류 |
| 외교적 사고 | 당·신라·일본의 관계를 고려한 입장 | 일부 국제 관계 고려 | 관계 고려 없음 |
| 발해 정체성 | 고구려 계승 명시·독자성 표현 | 한 측면만 표현 | 정체성 모호 |
| 형식과 문체 | 옛 외교 문서의 격식 + 현대적 가독성 | 형식은 갖춤 | 비격식 |
제출 — 종이 인쇄 또는 디지털. 발표 또는 친구와 교환. 동료 평가 + 교사 평가.
남북국의 두 별을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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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발해의 250년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고려의 성립과 변천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