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II · UNIT I · LESSON 02

삼국과 가야의 성장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만주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경쟁한 700년. 그 사이에서 철의 가야가 6국 연맹으로 빛났다. 광개토대왕의 화살이 날고, 칠지도가 바다를 건너던 시대.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08-02 삼국과 가야의 성립·발전 과정을 비교하고, 각국이 어떻게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해 갔는지 이해한다.
SECTION · 01

기원전 1세기 — 네 나라가 일어서다

고조선이 무너진 자리, 여러 나라 위에서 네 강국이 솟아올랐다. 위치와 성격은 달랐지만, 모두 비슷한 길을 걸었다 — 연맹 왕국 → 중앙 집권 국가로의 길.

📍 네 나라, 네 출발

GOGURYEO

고구려

B.C. 37 · 주몽 · 졸본

압록강 중류 산악 지대. 척박한 땅 → 정복으로 보충. 5부족 연맹에서 출발해, 4세기 미천왕 대 낙랑·대방을 흡수, 한반도 진출의 발판을 마련.

BAEKJE

백제

B.C. 18 · 온조 · 위례성

고구려에서 내려온 부여계가 한강 유역의 마한 소국과 결합. 한강의 평야 + 황해 항로 → 일찍이 중국·왜와 교류. 4세기 근초고왕 대 한반도의 가장 강한 나라로.

SILLA

신라

B.C. 57 · 박혁거세 · 서라벌

경주 분지의 진한 소국 사로국에서 시작.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왕위. 산으로 막힌 위치 → 가장 늦게 발전했지만, 일단 통합되자 강력한 단결력.

GAYA

가야

A.D. 42 · 김수로 · 김해

변한의 후예. 6개의 소국이 모인 연맹. 김해의 금관가야 → 5세기 이후 고령의 대가야로 중심 이동. 철의 왕국이었지만 중앙 집권에 이르지 못함.

SOURCE · 주몽 신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하늘의 아들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알이 태어났다. 알에서 나온 사내아이는 일곱 살에 활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번을 쏘면 백번 다 맞혔다. 그래서 이름을 '주몽(잘 쏘는 자)'이라 했다. 그가 부여를 떠나 졸본에 도읍을 정하니, 그 나라가 고구려다."

— 김부식 『삼국사기』 (1145년)
SECTION · 02

중앙 집권 국가가 되는 길 — 세 가지 열쇠

삼국은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연맹 왕국에서 강한 왕권의 중앙 집권 국가로. 그 과정에서 세 가지 열쇠가 공통으로 쥐어졌다 — 율령·불교·정복.

🔑 중앙 집권화의 세 가지 공통 열쇠

KEY · 01

율령 반포

법을 글로 적어 온 나라에 똑같이 적용 → 왕이 곧 법. 부족장 마음대로의 시대 끝.

KEY · 02

불교 수용

"왕이 곧 부처" — 종교가 왕권을 신성하게. 부족별 토착 신앙을 넘어서는 공통의 이념.

KEY · 03

정복·영토 확장

정복으로 부족장의 땅을 왕의 직할지로. 새 영토에서 세금병사가 들어옴.

📈 삼국의 전성기 — 누가, 언제, 어떻게?

시대
고구려 (高)
백제 (百)
신라 (新)
4세기
소수림왕 — 율령·불교·태학
근초고왕 — 마한 통합, 평양성 공격(고국원왕 전사), 요서·왜와 교류 → 전성기
내물 마립간 — 김씨 왕위 세습,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 격퇴
5세기
광개토 · 장수왕 — 만주·요동·한강 유역 차지, 평양 천도(427) → 전성기
개로왕 — 한성 함락(475), 웅진(공주)으로 천도, 시련의 시기
눌지·자비 마립간 — 나·제 동맹(433)으로 고구려에 맞섬
6세기
분열·돌궐과 대립 → 점차 수세
성왕 — 사비(부여)로 천도, 일본 불교 전파,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554)
진흥왕 — 한강 유역 차지, 대가야 정복, 4개의 순수비 → 전성기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높이 6.39m, 1,775자. 장수왕이 아버지를 위해 414년 건립. 지린성 지안.
안악3호분 행렬도
안악3호분 행렬도4세기 고구려 벽화. 200명이 넘는 행렬이 왕의 위엄을 보여준다.
칠지도
칠지도일곱 가지가 뻗은 백제의 칼. 4세기 근초고왕 때 왜에 보냈다고 전한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충남 공주 송산리. 벽돌무덤 양식 —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보여준다.
무령왕 금제 관식
무령왕 금제 관식국보 154호. 백제 왕의 권위를 빛으로 표현한 황금 장식.
신라 금관
신라 금관천마총 출토. 出자 모양 가지·곡옥. 자작나무와 사슴뿔을 함께 표현한 시베리아 샤먼적 권위.
DEEP DIVE · 광개토대왕릉비

높이 6.39m, 1,775자 — 고구려의 자랑

414년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재위 391~412)의 업적을 만주의 거대한 자연석에 새겨 세웠다. 이 비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비석 기록 중 하나로,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업 — 백제 공격, 신라 구원(400년), 후연 격파, 동부여 정벌 — 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왕의 은택은 하늘에 닿고 위엄은 사해에 떨쳤다. (…) 백잔(백제)과 신라는 옛부터 신민이었다. (…) 영락 10년(400)에 보병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니, (…) 왜구가 물러갔다." — 광개토대왕릉비문

비문에는 또 한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 '왜(倭)'의 등장이다. 일본 학계는 이 부분을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으려 했지만, 한국 학계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같은 비석, 다른 해석 — 사료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니라 해석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

SECTION · 03

가야 — 철의 왕국, 그러나 통합되지 못한 별

변한의 후예가 세운 여섯 나라의 연맹. 김해의 금관가야부터 고령의 대가야까지 — 한반도 남동부에서 약 500년간 빛났지만,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해 진흥왕의 신라에 흡수되었다.

⚙️ 가야의 흥망 — 두 단계

PHASE 01 · 1~4세기

금관가야 — 김해의 황금 시대

시조 김수로왕(A.D. 42). 낙동강 하구·바다 — 철과 무역의 중심. 낙랑과 왜를 잇는 중계 무역. 400년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때 큰 타격.

PHASE 02 · 5~6세기

대가야 — 고령의 마지막 빛

중심이 내륙 고령(경북)으로 이동. 대가야가 연맹의 우두머리.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외교로 살아남았으나, 562년 진흥왕에게 정복되며 가야 600년이 막을 내림.

가야 철제 갑옷
가야 철제 갑옷·투구김해·합천 출토. 철판을 잇대어 만든 정교한 갑옷 — 가야가 왜 '철의 왕국'으로 불렸는지.
기마인물형 뿔잔
기마인물형 뿔잔국보 275호. 말을 탄 무사가 뿔잔을 든 토기 — 가야의 미감과 일상이 한 그릇에.
SECTION · 04

왕 — 업적 매칭하기

왼쪽 왕과 오른쪽 업적을 차례로 클릭해 짝지어 보자. 6쌍을 모두 맞추면 완료.

👑 왕과 업적을 짝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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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칼럼의 왕을 하나 클릭한 뒤, 오른쪽 칼럼에서 그 왕의 업적을 클릭한다. 모두 짝지은 후 검사한다.

WHO · 왕
근초고왕 (백제)
광개토대왕 (고구려)
장수왕 (고구려)
무령왕 (백제)
진흥왕 (신라)
김수로왕 (금관가야)
WHAT · 업적
한강 유역 차지, 대가야 정복, 4순수비
마한 통합, 평양 공격, 칠지도를 왜에
평양 천도, 한성 함락, 한반도 남부 진출
42년 김해에서 건국, 철·중계무역의 시조
신라 구원(400), 후연 격파, 만주 확장
22담로에 왕족 파견, 중국 남조와 교류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에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차례로 일어났다. 가야는 끝내 연맹에 머물렀고, 삼국은 모두 율령·불교·정복이라는 세 열쇠로 중앙 집권 국가가 되었다.
  • 전성기는 차례로 4세기 백제(근초고), 5세기 고구려(광개토·장수), 6세기 신라(진흥). 한반도의 주도권이 동·서·남으로 옮겨갔다.
  • 광개토대왕릉비·칠지도·무령왕릉·호우총 청동그릇은 이 시대의 정치 관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 가야는 김해 금관가야 → 고령 대가야로 중심을 옮기며 500년을 버텼지만, 562년 진흥왕의 정복으로 무너졌다.
  • 이 시대의 다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 "어떤 나라가 살아남을까?" 그리고 곧 답이 나온다 (다음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