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 — 1945
VOLUME I · LESSON 01

세계 대전과 국제 질서의 변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의 한 발의 총성이 4년의 비극을 열었고, 그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잉태했다. 두 번의 세계 대전, 그 사이의 30년 — 인류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시대를 만난다.

ACHIEVEMENT GOAL 학습 목표
9역06-0120세기 전반 세계 질서의 변화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중심으로 파악한다. 서양 열강 간 경쟁과 대립, 러시아 혁명, 민주주의 확대, 세계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등장을 함께 본다.
SECTION · 01

1차 세계 대전 — 4년의 참호 전쟁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강대국 사이에는 영토·식민지·시장을 둘러싼 긴장이 쌓이고 있었다. 3국 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이 마주섰고,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였다. 1914년 6월 28일, 그 화약고에 불이 붙었다.

사라예보 사건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
솜 전투 참호
참호 — 솜 전투 (1916) 진흙·쥐·시신·끝없는 포격의 4년
WORLD WAR I · 1914~1918

"한 발의 총성에서 시작된 4년"1차 세계 대전 · 1914 ~ 1918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한 달 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고, 동맹국들이 연쇄적으로 참전하면서 한 발의 총성이 4년의 세계 대전을 불러왔다.

이전 전쟁과는 차원이 달랐다. "새로운 무기"가 인간을 대량으로 죽였다 — 기관총·독가스·탱크·잠수함·전투기. 양 진영은 참호를 파고 마주 보았는데, 한 번의 공격에 수만 명이 죽고도 100m도 못 전진하는 게 일상이었다. 베르됭 전투(1916)에서만 약 80만 명, 솜 전투에서도 그 정도가 죽거나 다쳤다.

1917년 미국이 참전하고 같은 해 러시아가 혁명으로 빠지면서 전쟁의 균형이 바뀌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 약 1,700만 명이 사망했다. 이듬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 독일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20년 뒤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사라예보 사건3국 동맹·협상참호 전쟁1,700만 사망베르사유 조약
VERSAILLES · 베르사유 체제

"평화의 조약"이 잉태한 또 다른 전쟁베르사유 조약 · 1919년 6월 28일

1919년 1월 파리 강화 회의가 열렸다. 6월 28일(우연히도 사라예보 사건 정확히 5년 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조약이 체결되었다. 핵심 내용은 독일에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 영토 13% 박탈, 군대 10만 명으로 제한, 천문학적 배상금(약 132억 마르크).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외쳤고, 이 영향으로 동유럽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 등 새 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원칙은 유럽 안에서만 적용되었다 — 식민지 아시아·아프리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3·1 운동(1919)·5·4 운동(1919)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결과는 국제연맹(1920)의 창설. 인류 최초의 전 세계 평화 기구였다. 그러나 미국이 가입하지 않고, 1930년대 일본·독일이 탈퇴하면서 실효성 없는 토론장이 되었다. 결국 베르사유 체제는 20년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 2차 대전으로.

베르사유 조약민족자결주의국제연맹3·1 운동·5·4 운동 영향
베르사유 조약 체결
베르사유 조약 체결 (1919) 베르사유 거울의 방 · 1차 대전 공식 종전
이것은 평화의 조약이 아니다. 20년의 휴전일 뿐이다.
— 페르디낭 포슈 프랑스 원수, 베르사유 조약 체결 직후 (1919) · 실제로 정확히 20년 뒤 2차 대전이 일어났다.
SECTION · 02

러시아 혁명 —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1차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17년, 러시아에서 두 번의 혁명이 연달아 일어났다. 2월 혁명(차르 니콜라이 2세 퇴위)과 10월 혁명(레닌의 볼셰비키 권력 장악) —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사건이었다.

겨울궁전 점령
겨울궁전 점령 (1917년 10월 26일)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
RUSSIAN REVOLUTION · 1917

"빵·평화·토지를"2월 혁명과 10월 혁명 · 1917

러시아는 1차 대전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식량 부족, 끝없는 전쟁 사상자, 차르 정부의 무능. 1917년 2월(러시아 구력),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성 노동자들이 "빵을 달라"며 시위를 시작했고, 며칠 만에 군대까지 합류해 차르 정부가 무너졌다(2월 혁명).

임시 정부가 들어섰지만 전쟁을 끝내자는 민중의 요구를 외면했다. 이때 망명에서 돌아온 레닌"평화·토지·빵"이라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1917년 10월 25일(러시아 구력) 볼셰비키가 겨울궁전을 점령하고 권력을 잡았다(10월 혁명).

곧 4년의 내전이 이어졌고,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USSR)이 정식 출범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노동자·농민이 주인이라는 새 체제는 전 세계 노동 운동·식민지 독립 운동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1924~1953)에 이르러 일당 독재·집단농장·대숙청으로 변질되며 다른 길을 갔다.

2월 혁명레닌·볼셰비키10월 혁명최초의 사회주의 국가1922 소련
SECTION · 03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등장

1차 대전 후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시대(Roaring Twenties)"를 즐겼다. 그러나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 시장의 폭락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전 세계로 퍼졌고, 그 속에서 전체주의가 자랐다.

대공황 빵줄
대공황 빵줄 — 뉴욕 1930년대 · 미국 국립기록원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1933년 독일 총리 → 1934년 총통
DEPRESSION & FASCISM

경제 붕괴가 만든 그늘대공황 · 1929 ~  |  전체주의 · 1920년대~

1929년 10월 24일("검은 목요일"), 뉴욕 주식 시장이 무너졌다. 며칠 만에 시가총액의 40%가 증발했다. 미국 산업 생산은 4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25%에 이르렀다. 길거리에 빵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위기는 곧 전 세계로 퍼졌다. 미국이 무역과 자본을 끊자 유럽 경제도 무너졌다. 영국·프랑스는 식민지로부터 짜내는 방식으로(블록 경제) 위기를 넘기려 했고, 미국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으로 정부가 직접 개입해 일자리를 만들었다(1933~).

그러나 식민지가 적고 민주주의 전통이 약한 독일·이탈리아·일본에서는 다른 길이 열렸다 — "강력한 지도자가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전체주의가 인기를 얻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이탈리아 · 1922), 히틀러의 나치즘(독일 · 1933), 일본의 군국주의(1931 만주사변 이후). 셋 모두 민주주의 부정 + 군사 확장 + 인종주의·국수주의를 특징으로 했다.

1929 대공황뉴딜 정책블록 경제파시즘·나치즘·군국주의전체주의
NAZI · 나치즘

"국가에 모든 것을, 국가 밖에 아무것도"히틀러와 나치 독일 · 1933 ~ 1945

1923년 뮌헨 폭동으로 감옥에 갔던 히틀러는 옥중에서 『나의 투쟁』을 썼다. 그가 외친 것은 단순했다 —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비참하다.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때문에 약해졌다. 게르만 민족이 다시 위대해져야 한다." 대공황으로 절망한 사람들에게 이 단순한 답이 통했다.

1933년 1월 히틀러는 합법적 선거로 독일 총리가 되었다. 곧 의회를 무력화하고 다른 정당을 모두 해체했으며, "전권위임법"으로 의회 없이 법을 만들 권한을 얻었다. 1934년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자신을 "총통(Führer)"으로 선포했다.

나치의 대규모 군중 집회는 정치적 메시지의 새로운 도구였다. 뉘른베르크에 수십만 명을 모아 거대한 깃발과 횃불 행렬, 일사불란한 군무, 거대한 스피커로 울리는 히틀러의 연설 — 개인을 군중 속에 녹여 국가에 헌신하게 만드는 의례였다. 그 끝에는 침략과 학살이 있었다.

『나의 투쟁』1933 총리전권위임법총통뉘른베르크 집회
뉘른베르크 나치 집회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 (1934) 깃발·횃불·군중의 정치적 의례

왜 사람들은 전체주의를 지지했을까

역사가들이 꼽는 1930년대 전체주의 부상의 조건:

  • 경제적 절망 — 대공황으로 일자리·재산·미래를 잃은 사람들이 "누구든 해결해 다오" 외쳤다.
  • 1차 대전의 상처 — 독일은 패전과 베르사유의 굴욕에 분노했고, 이탈리아·일본은 승전국이면서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 민주주의의 미숙 — 의회가 무능해 보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환상이 퍼졌다.
  • 희생양 만들기 — 위기의 원인을 "유대인·공산주의자·외국인"에게 돌리는 단순한 논리가 통했다.

이 네 조건은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 "위기 때 민주주의가 가장 위험하다"는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SECTION · 04

2차 세계 대전 —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

"평화의 조약"이 잉태한 또 다른 전쟁.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6년의 전쟁. 약 8,500만 명이 사망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극이었다.

진주만 공격
진주만 공격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참전을 부른 일본의 기습
노르망디 상륙
노르망디 상륙 (1944년 6월 6일·D-Day) 유럽 전선 전세 역전의 결정적 작전
히로시마 원폭
히로시마 원폭 (1945년 8월 6일)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핵무기
WORLD WAR II · 1939~1945

유럽에서 태평양까지2차 세계 대전 · 6년의 전 지구적 전쟁

1939년 9월 1일 히틀러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틀 후 영국·프랑스가 선전포고. 1940년까지 독일은 노르웨이·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를 차례로 점령했다. 영국 본토 공습(Battle of Britain)도 시작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만주(1931)·중국(1937)에 이어 동남아시아로 확장하고 있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참전했다. 유럽 전쟁과 아시아 전쟁이 하나의 "세계 대전"으로 합쳐진 순간이다.

1942년 말부터 전세가 바뀌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1943), 노르망디 상륙(1944), 베를린 함락(1945년 4월), 일본의 항복(1945년 8월). 마지막에는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떨어졌다 — 한 발에 수만 명이 즉사하고 평생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약 8,500만 명 사망(이 가운데 약 5,000만 명은 민간인).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전 세계 GDP의 절반이 군수에 쓰였다. 무엇보다 유대인 600만 명을 포함한 홀로코스트, 일본의 전쟁 범죄, 인종 차별과 잔혹 행위는 인류가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비극이 되었다.

1939 폴란드 침공1941 진주만1944 노르망디1945 원폭8,500만 사망
1914
1914.6.28
사라예보 사건 —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

한 발의 총성으로 4년의 전쟁이 시작된다.

1918
1918.11.11
1차 세계 대전 종전

약 1,700만 명 사망. 베르사유 조약(1919)으로 독일에 가혹한 처벌.

1917
1917.10
러시아 10월 혁명 —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레닌·볼셰비키 권력 장악. 1922년 소련 정식 출범.

1929
1929.10.24
대공황 시작 — 검은 목요일

뉴욕 주식 시장 폭락. 전 세계 경제로 확산.

1933
1933.1
히틀러 독일 총리 취임

합법적 선거로 권력 장악. 곧 의회 무력화·일당 독재.

1939
1939.9.1
2차 세계 대전 시작 — 독일의 폴란드 침공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

1941
1941.12.7
진주만 공격 — 미국 참전

일본의 기습. 태평양 전쟁이 본격 시작.

1945
1945.8.15
2차 세계 대전 종전 — 일본 항복

약 8,500만 명 사망.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한국 광복.

SECTION · 05 · INTERACTIVE

탐구 활동 — 4가지 큰 흐름의 키워드

아래 12장의 단서 카드를 네 흐름(1차 대전 / 러시아 혁명 / 대공황·전체주의 / 2차 대전)에 분류해 봅시다.

방법 · ① 단서 카드 클릭 → ② 네 칸 중 알맞은 곳 클릭. 각 흐름당 3개씩 단서가 있어요.
1차 세계 대전 0 / 3
러시아 혁명 0 / 3
대공황·전체주의 0 / 3
2차 세계 대전 0 / 3
🎉 네 흐름을 모두 정확히 분류했습니다! 1914~1945, "30년의 폭주"는 사라예보의 한 발 → 1차 대전 → 베르사유 → 러시아 혁명 → 대공황 → 전체주의 → 2차 대전으로 이어진 거대한 연쇄였습니다. 한 사건이 다음 사건의 씨앗이 되었고, 그 결과 인류는 두 번 거대한 비극을 겪었지요. "역사는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연쇄된 흐름"임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입니다.
진행 0 / 12
SECTION · 06 · SUMMARY

한눈에 정리

오늘 배운 것

  • 1차 대전(1914~1918) — 사라예보 사건 발단. 참호 전쟁. 1,700만 사망. 베르사유 조약(1919)이 독일에 가혹한 처벌 → 20년 뒤 또 다른 전쟁의 씨앗.
  • 러시아 혁명(1917) — 2월 혁명(차르 퇴위) + 10월 혁명(레닌·볼셰비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1922년 소련 출범.
  • 대공황(1929~) — 뉴욕 주식 폭락 → 전 세계 경제 위기. 미국은 뉴딜, 영·프는 블록 경제. 독·일·이는 전체주의의 길로.
  • 전체주의 — 무솔리니의 파시즘,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민주주의 부정 + 군사 확장 + 인종주의·국수주의.
  • 2차 대전(1939~1945) — 6년의 전 지구적 전쟁. 약 8,500만 명 사망.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한국 광복(1945.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