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평화란 무엇인가 — 갈퉁의 평화학
"전쟁이 없으면 평화인가?" 평화학(peace studies)의 창시자인 노르웨이 사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 1930~2024)은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평화를 두 차원으로 나누어 사고할 것을 제안했다.
총소리가 멎었다고 평화가 온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굶주리고, 누군가가 차별받으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폭력은 다른 모습으로 계속된다. 진정한 평화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라진 상태이며, 이를 "적극적 평화"라 부른다.
갈퉁의 폭력 삼각형 — 세 가지 폭력
CONCEPT MAP"폭력"의 세 가지 얼굴
갈퉁은 폭력을 단순한 신체적 공격을 넘어 "인간의 잠재력 실현을 가로막는 모든 것"으로 재정의했다. 그러자 폭력의 종류가 세 가지로 드러났다.
소극적 평화 vs 적극적 평화
소극적 평화 — 전쟁의 부재
직접적·물리적 폭력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 정전·휴전·평화협정 등으로 가능. 그러나 갈등의 근본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어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다.
- 한반도 정전체제(1953~) : 전쟁은 멈췄으나 평화협정 미체결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 반복되는 충돌
- 전쟁이 끝났지만 빈곤·트라우마·분열이 계속되는 상태
적극적 평화 — 모든 폭력의 부재
직접적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문화적 폭력까지 모두 해소된 상태. 인간 안보(human security)가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
- 빈곤·기아·차별이 사라진 사회
- 모든 시민이 정치적 발언권을 갖는 민주주의
- 인종·성별·종교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문화의 소멸
- 북유럽 복지국가가 이상에 가까운 사례로 자주 거론
소극적 평화가 "갈등의 결과"를 다스리는 것이라면, 적극적 평화는 "갈등의 원인"을 다스리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평화 노력 또한 이 두 차원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 2국제 갈등의 다양한 얼굴
국제 갈등은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영토·종교·자원·민족이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난다. 여기에 21세기에는 사이버 안보·AI 군비경쟁 같은 새로운 영역까지 등장했다.
전통적 갈등의 네 유형
영토 분쟁
국경선 획정·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자원 확보·전략적 거점·민족 자존심이 결합되어 풀기 어렵다.
종교·문명 갈등
같은 땅·같은 성지를 둘러싼 다른 신앙.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일정 부분 설명하지만 단순화 비판도 받음.
자원·환경 분쟁
석유·물·희토류·식량 등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갈등. 21세기에는 물(water war)과 희토류 분쟁이 부각.
민족·종족 갈등
한 국가 안에 여러 민족이 공존하거나, 한 민족이 여러 국가에 흩어진 경우. 식민지 시대 자의적 국경 획정의 후유증.
"새로운 전쟁(new wars)" — 21세기 갈등의 변화
영국 학자 메리 캘도어(Mary Kaldor)는 1999년 『새로운 전쟁』에서 냉전 이후의 갈등이 과거와 다르다고 진단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줄어든 대신, 국가 안의 무장집단·민병대·테러조직이 얽힌 비대칭 분쟁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21세기에는 새로운 갈등이 추가되었다. ① 사이버 전쟁(국가 인프라 해킹, 가짜뉴스 작전), ② AI·드론 군비경쟁(자율살상무기), ③ 우주 전쟁(위성·소행성 자원), ④ 기후 안보(기후난민, 북극·물 자원 분쟁). 갈등의 무대는 이제 지상에서 사이버 공간과 우주로까지 확장되었다.
분쟁의 현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시작. 21세기 유럽 최대 규모의 전쟁.
시리아 내전과 난민
2011년 시작된 내전으로 1,200만 명 이상의 난민 발생.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은 유대교·이슬람·기독교의 공동 성지.
UN 본부 — 뉴욕
1945년 창설, 193개 회원국. 안보리·평화유지군의 본거지.
유엔 평화유지군 (PKO)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 한국군도 다수 참여.
국경없는의사회 (MSF)
1971년 창립, 1999년 노벨평화상. 70여 개국에서 의료 지원.
§ 3지금 세계의 분쟁 지도
세계 어디에서 어떤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배경과 해결 노력을 함께 본다. 유형(영토·종교·자원·민족) 필터를 사용해 갈등의 패턴을 비교해 보자.
세계 주요 분쟁 매핑
INTERACTIVE아래 지도에서 색상은 갈등 유형을 나타낸다. 점을 클릭하면 상세 정보가 표시된다.
§ 4국제 협력의 사례
국제 갈등이 모든 시기에 동일한 강도였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는 역사상 가장 정교한 국제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 대표적인 장치들을 살펴본다.
국제연합 (United Nations)
2차 세계대전 후 창설. 193개 회원국. 안보리·총회·국제사법재판소 등 6개 주요 기관과 산하 전문기구.
세계보건기구 (WHO)
전염병 대응, 보건규범 형성.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천연두 박멸(1980) 등의 성과.
유네스코 (UNESCO)
교육·과학·문화를 통한 평화. 세계유산 지정, 무형문화재 보호, 평화의 문화 조성.
유엔난민기구 (UNHCR)
난민 보호와 정착 지원. 1차(1954)·2차(1981) 노벨평화상 수상. 한국도 1992년 난민협약 가입.
유럽연합 (European Union)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이 만든 통합 실험. 2012년 노벨평화상. 단일시장·통화·외교를 점진적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10개 회원국. ASEAN 방식(컨센서스·내정불간섭)으로 유연한 협력. 한·중·일과 ASEAN+3 회의.
국제 NGO 네트워크
국경없는의사회(MSF, 1999 노벨), 국제앰네스티(1977 노벨), 옥스팜, 그린피스 등. 국가와 기업이 외면한 영역에서 활동.
다자조약 시스템
국제법의 핵심. 한 번 비준하면 국가도 구속된다. 기후·핵·전쟁범죄·인권 등 광범위한 영역.
국제평화지수(GPI) —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호주의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는 매년 세계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를 발표한다. 사회 안전·국내 갈등·군사화 등 23개 지표로 163개국을 평가한다.
2024년 상위 5위는 아이슬란드·아일랜드·오스트리아·뉴질랜드·싱가포르. 한국은 약 40위권에 머문다(분단 상황의 영향). 가장 평화로운 나라들의 공통점은? 분쟁이 없을 뿐 아니라, 높은 사회신뢰·낮은 부패·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낮은 불평등—갈퉁이 말한 "적극적 평화"의 조건들이다.
§ 5평화를 위한 행위 주체
세계 평화는 한 행위자가 만들지 않는다. 국가·국제기구·NGO·기업·세계시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다층적 평화 거버넌스의 그림이다.
평화 거버넌스의 다섯 층위
세계시민 — 스토아에서 누스바움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물음에 디오게네스는 답했다. "나는 세계의 시민(kosmopolitēs)이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폴리테스)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속한 자라는 선언이었다. 이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의 시작이다.

세계시민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의 시민권은 우연이다. 누군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우연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같은 도덕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게 된다. 이것이 세계시민의식의 출발점이다.
세계시민의식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으로 표현된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 분쟁지역 인도지원 후원, 글로벌 이슈에 대한 SNS 발언, 유엔 청년 봉사단(UNV) 참여, 다문화 이웃에 대한 환대 — 이 모든 작은 행동이 평화 거버넌스의 가장 아래층을 떠받친다.
§ 6판별기 — 소극적 평화일까, 적극적 평화일까
아래 사례들은 모두 "평화"라는 이름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갈퉁의 분류에 따라 보면 서로 다른 평화의 모습이다. 각 사례가 소극적 평화인지, 적극적 평화인지 판별해 보자.
평화 판별 퀴즈
INTERACTIVE각 사례를 읽고 어떤 종류의 평화인지 선택하세요. 정답을 누르면 해설이 표시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제 갈등과 평화의 일반적인 그림을 살펴보았다. 이제 시선을 한반도로 돌려, 우리의 갈등과 우리가 할 수 있는 평화의 기여를 생각해 본다.
§ Q형성평가 — 학습 점검
5문항으로 이 단원의 핵심을 점검해 보자. 객관식·단답형은 즉시 채점되고, 서술형은 모범답안과 비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