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그 한 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1987년 6월, 시민들은 거리에서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헌법은 종이 위의 문구일 뿐,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매일의 제도와 관행이었다. 6공화국 출범 이후 30여 년, 한국은 평화적 정권 교체와 시민운동의 성장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왔다.
이 단원에서는 6월 항쟁 이후 들어선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과 그 의미를 살피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제도화된 정권 교체의 과정을 정리한다. 또한 환경·여성·인권·노동 영역에서 자라난 시민운동과 NGO의 활동, 그리고 2016~17년 촛불집회가 보여준 시민 정치의 가능성을 함께 본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항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가 정착되는 시간과 일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함께 흘러야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두 번의 평화적 정권 교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네 차례의 교체를 경험했다.
▲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네 단계 — 이 단원의 핵심 키워드
1987년 10월의 9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했다. 같은 해 12월 16일, 국민이 직접 뽑은 첫 대통령은 — 아이러니하게도 —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였다. 야권 분열(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결과였다.
노태우는 전두환 정부의 후임이었지만, 직선제로 선출된 점에서 6공화국의 첫 정부로 분류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로 분단 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국제 무대에 자리매김했고, 사회주의권 붕괴를 배경으로 한 북방외교를 추진하였다. 1989년 헝가리·폴란드, 1990년 소련(한·소 수교), 1992년 중국(한·중 수교)과 외교 관계를 맺어, 냉전 시대 한국 외교의 폭을 단숨에 넓혔다.
국내적으로는 5공 청문회(1988~89)가 열려 5·18 광주의 진상을 국회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언론 자유와 노동 운동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1987~89, 노동자 대투쟁). 그러나 3당 합당(1990, 민자당)으로 야권의 견제력이 약화되고, 5·18 책임자 처벌은 미뤄지는 한계도 분명했다.
6월 항쟁 직후인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분수령이었다. 3,300여 건의 노동쟁의가 일어났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민주노조들이 훗날 민주노총(1995)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1989),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987) 등 분야별 자주 조직이 잇따라 결성되며, 시민사회의 폭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31년 만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었다. 1998년 국민의 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두 정부는 군부 시대의 유산을 정리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 규범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김영삼은 취임 직후 하나회(전두환·노태우 중심의 군 내 사조직)를 전격 해체(1993.3)했다. 군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한 핵심 조치였다. 1993년 8월 12일에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단행하여, 차명·가명 거래의 관행을 깨고 조세 정의의 기반을 닦았다.
1995년에는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어, 광역·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모두 주민이 선출하게 되었다(30여 년 만의 부활). 같은 해 12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제정되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죄로 기소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는 원칙이 확립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는 1996년 OECD 가입으로 선진국 클럽에 진입했다. 그러나 같은 해 노동법·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1996.12)로 큰 반발을 샀고, 1997년 한보·기아 사태와 동남아 외환위기가 겹치며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적 위기로 임기를 마감했다(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원 참조).
199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이회창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실현된 순간이었다. 평생을 군사 정권의 정적으로 살아온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4대 부문(금융·기업·노동·공공) 구조조정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1년 8월 IMF 차입금을 조기 상환("IMF 졸업")했다.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 설치(2001), 정보공개법 시행,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가동 등 인권·과거사 영역의 제도화를 이뤘다.
대북관계에서는 햇볕정책(포용 정책)을 견지하여 2000년 6월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대중은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2000.12).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외환위기로 위축되었던 한국 사회의 자신감을 다시 끌어올렸다.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서 한 사회의 민주화가 공고화(consolidation)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두 번의 평화적 정권 교체(two-turnover test)"이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제안한 이 기준은, 한 번의 정권 교체가 우연이 아니라 제도화된 규칙임을 두 차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여→야, 김대중), 2007년(야→여, 이명박), 2017년(다시 정권 교체), 2022년(또 한 번)으로 이미 네 차례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이는 선거 결과를 패자가 승복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음을 뜻한다. 외형적·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사례이다.
그러나 절차의 안정이 곧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 다양한 목소리의 대표, 소수자의 권리 보장—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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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시민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는 것을 표방하였다. 이후 2008·2013·2017·2022년에 걸쳐 정권 교체가 이어지며, 한국 민주주의는 대통령제 정상 작동이라는 상태에 도달하였다.
변호사 출신의 노무현은 권위주의적 통치 문화의 청산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청와대 권력을 분산해 책임총리제를 시도했고, 검찰·언론과의 권력적 거리두기를 추구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5)가 출범해 일제강점기·한국전쟁·권위주의 시기의 인권 침해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다.
국토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추진되었으나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절되었고, 결국 세종특별자치시(행정중심복합도시)로 절충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 FTA를 체결(2007)하고, 2007년 10월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10·4 선언).
참여정부는 진보적 정책 시도와 보수 여론의 충돌 속에 큰 정치적 파장을 겪었다. 2004년 3월에는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의결되었지만(노무현 탄핵), 헌법재판소가 5월에 기각하면서 대통령직에 복귀하였다. 이 사건은 탄핵의 절차와 헌법재판의 역할을 시민이 직접 학습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2008~13)는 4대강 사업, 자원외교, 한·미 동맹 강화 등을 추진하였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는 광우병 촛불집회는 시민 광장의 부활을 알린 사건이었다. 박근혜 정부(2013~17)는 창조경제, 문화융성을 내세웠으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대응 부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2016년 10월,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보도되면서,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 소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인용으로 대통령직 파면이 확정되었다. 6개월간 23차례 집회에 연인원 약 1,700만 명이 참여했으며, 사상자·연행자가 거의 없는 평화 집회로 기록되었다.
문재인 정부(2017~22)는 적폐 청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2018 판문점·평양 정상회담), 코로나19 방역, 부동산 정책 등을 추진하였다. 2022년에는 윤석열이 0.73%p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어 다시 정권이 야→여로 교체되었다. 다섯 차례에 걸친 평화적 정권 교체는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시민운동(NGO)의 폭발적 성장이었다. 군사 정권의 억압 속에 잠재되어 있던 다양한 운동 에너지가, 분야별 자주 조직으로 자라났다. 환경·여성·인권·소비자·노동·평화 — 정치 무대의 바깥에서 시민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민주주의의 영역이다.
1989년 출범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시작으로, 1994년 참여연대, 1993년 환경운동연합,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들은 입법 청원, 정보 공개 청구, 공익 소송, 캠페인 등 제도적 수단을 적극 활용하며 정부·기업·언론을 견제하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는 소액 주주 운동(재벌 총수 견제), 낙선 운동(2000 총선시민연대의 부적격 후보 낙선 운동), 정보 공개 청구, 행정 소송 등 다양한 시민 참여 방식이 제도화되었다. NGO의 정책 제안이 입법화되는 사례도 늘어, '시민이 만든 법'이 시민이 만든 법치 국가를 채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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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광장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의 학생회, 직장의 노조, 아파트의 주민 회의, 동네의 마을 사업 — 일상 곳곳에서 참여와 토론, 결정과 책임의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문화가 된다.
1995년 전면 실시된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광역시·도와 시·군·구의 단체장, 그리고 광역·기초 의회 의원을 주민이 직접 뽑는 4종 동시 선거가 자리잡았다. 2006년부터는 교육감 선거가 추가되었고, 2010년 이후에는 주민조례·주민감사·주민투표·주민소환 등 직접 참여의 제도가 정비되었다. 2022년 1월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발효되어 자치권이 크게 확대되었다.
1987년 이후 신문 발행의 허가제가 풀리고, 1990년대 후반의 인터넷 확산과 2000년대 SNS 보급은 여론 형성의 구조를 바꿔놓았다. 2002년 대선의 노사모, 2008년 광우병 촛불,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모두 디지털 광장과 결합한 새로운 시민운동이었다. 동시에 가짜뉴스·여론조작·필터버블 등 새로운 위험도 함께 나타났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승자 독식의 정치 문화, 다당제의 미완성, 청년·여성·소수자의 정치적 대표 부족,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지역·세대·이념 갈등의 격화 등이 그것이다. 1987년 체제 이후 30여 년,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를 묻는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정부 | 기간 | 주요 정책 | 민주적 진전 |
|---|---|---|---|
| 노태우 | 1988~93 | 북방외교(소·중 수교), 88올림픽, 5공 청문회 | 직선제 첫 정부, 노동자 대투쟁 시기 |
| 김영삼 (문민) | 1993~98 | 금융실명제, 지방자치 전면 실시(95), 5·18 특별법, OECD 가입 | 31년 만의 민간 정부, 군 사조직 해체, 전직 대통령 처벌 |
| 김대중 (국민의) | 1998~03 | 외환위기 극복, 햇볕정책, 1차 남북정상회담(00), 노벨평화상 |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여→야), 국가인권위 출범 |
| 노무현 (참여) | 2003~08 | 과거사 진상규명, 행정수도 시도, 한·미 FTA, 2차 정상회담(07) | 대통령 탄핵·복귀 사례, 권위주의 청산 시도 |
| 이명박 | 2008~13 | 4대강 사업, 한·미 동맹 강화 | 두 번째 정권 교체(야→여) |
| 박근혜 | 2013~17 | 창조경제, 한·일 위안부 합의(15) | 국정농단 →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17.3.10) |
| 문재인 | 2017~22 | 판문점 정상회담(18, 3차례), 코로나19 방역 | 세 번째 정권 교체 |
| 윤석열 | 2022~25 | 한·미·일 안보 협력, 12·3 비상계엄(24.12) | 네 번째 정권 교체 → 두 번째 대통령 파면(25.4.4) |
| 이재명 (국민주권) | 2025~ | 비상계엄 진상규명, 민생 회복, 균형 외교 | 다섯 번째 평화적 정권 교체 — 헌정 회복 |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1927~2008)은 1991년 저서 『제3의 물결』에서 한 사회의 민주화가 공고화(consolidation)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두 번의 평화적 정권 교체(two-turnover test)"를 제시했다.
"민주적 선거에서 정권을 잡은 정당 또는 집단이, 그 후의 선거에서 패배하여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한 사례가 두 번 나타날 때, 우리는 그 민주주의가 안정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 S. 헌팅턴, 『제3의 물결: 20세기 후반의 민주화』(1991)
한국은 1997년(여→야, 김대중), 2007년(야→여, 이명박), 2017년(여→야, 문재인), 2022년(야→여, 윤석열)으로 이미 네 차례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헌팅턴 기준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는 외형적·절차적으로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불평등 완화, 소수자 대표, 다당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