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중 · 0%
10한사1-02-04

사상과 문화

"무엇을 믿었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 사상은 시대의 영혼이다.

영역 불교 · 유교 · 실학 · 동학 국제 교류와 토착화
VISUAL JOURNEY · 사상의 풍경

사진으로 미리 보는 사상과 문화

석굴암 본존불
석굴암 본존불 · 통일 신라 불교의 정점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 호국 불교의 결정체
선(禪) · 지눌의 조계종
도산서당
도산서당 · 퇴계 이황의 거처
동학 창시
동학 · 민중의 새 종교
유(儒) · 조선 500년의 뼈대
실(實) · 실학의 도전

사상은 시대의 영혼

사람은 무엇을 믿고 사는가. 어떤 가치를 옳다고 여기는가. 무엇으로 죽음과 고통을 견디는가. 이 질문에 시대마다 다른 답이 주어졌고, 그 답이 한 시대의 사상과 문화가 되었다.

한국의 전근대 사상사는 ① 외래 사상의 수용, ② 토착화, ③ 새 사상으로의 분화의 반복이었다. 불교가 4세기 인도·중국에서 들어와 통일 신라·고려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고, 유교는 일찍부터 들어왔지만 조선에 와서야 성리학의 형태로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그 성리학의 한계를 비판하는 실학, 서양에서 온 서학(천주교), 민중이 만든 동학이 등장했다.

이 단원에서는 사상의 흐름을 시대의 정치·사회·국제 교류와 연결해 본다. 한 사상은 결코 책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 체제를 정당화하기도 했고, 백성의 한을 위로하기도 했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토착화야말로 한국 사상사의 핵심 키워드이다.

1
불교 토착
화쟁·천태·조계 · 한국 불교
2
유교 정착
성리학이 사회를 지배
3
실학 도전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
4
민중 사상
서학·동학의 새 영성

한국 사상사의 네 흐름 — 도입과 토착화의 반복

석굴암 본존불
석굴암 본존불상. 통일 신라의 불교 미술이 도달한 정점. 동아시아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인도·간다라·중국의 영향을 받아 신라화한 양식.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출처 · 국보 제24호 · Wikimedia (CC BY-SA)

불교 — 외래 사상의 토착화

불교는 4세기 후반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인도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중국을 거치는 동안 여러 갈래로 분기한 이 종교는, 한반도에서 다시 토착화되어 한국 불교를 형성했다.

원효
617~686 · 신라
화쟁·일심
의상
625~702 · 신라
화엄종
지눌
1158~1210 · 고려
조계종·정혜쌍수
退
이황 (퇴계)
1501~1570 · 조선
주리론
이이 (율곡)
1536~1584 · 조선
주기론·경장
정약용 (다산)
1762~1836 · 조선 후기
실학·『목민심서』

삼국의 불교 수용

고구려: 372년 소수림왕 때 전진의 승려 순도(順道)가 불상과 경문을 전했다. ② 백제: 384년 침류왕 때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가 전했다. ③ 신라: 5세기에 이미 들어와 있었으나 공인은 늦어,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되었다. 불교 수용은 단순한 종교 도입이 아니라 왕권 강화의 도구였다. '왕즉불(王卽佛)' 사상이 부족장의 분권을 누르고 왕을 중심으로 한 통일된 권력을 정당화했다.

통일 신라 — 교종과 선종의 분화

통일 신라의 불교는 ① 교종(敎宗)—경전 공부를 중시, 5교(열반·계율·법성·화엄·법상)—과 ② 선종(禪宗)—참선·직관을 중시, 9산—으로 분화했다. 교종은 귀족 중심, 선종은 호족·일반 백성에게 가까웠다. 원효(617~686)는 '일심(一心)'의 사상으로 종파 통합을 주장하고 화쟁(和諍)의 논리를 폈으며, 정토 신앙을 통해 불교를 대중화했다. 의상(625~702)은 화엄 사상을 정립하고 부석사를 창건,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었다. 혜초(704~787)는 인도와 서역을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사료 · 원효의 화쟁
"모든 경(經)이 곧 한 부처의 말씀이요, 부처의 말씀이 곧 한 마음(一心)이라. 어찌 종파(宗派)에 막힘이 있겠는가. ⋯ 산은 하나이지만 봉우리가 여럿이고, 강은 하나이지만 줄기가 여럿이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읽기 포인트 —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은 당시 신라에 들어와 있던 여러 불교 종파의 대립을 일심(一心)의 차원에서 화해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사상이 아니라, 삼국 통일 후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요구와 닿아 있었다. 원효가 거리에서 무애가를 부르며 백성과 어울린 것도 그 연장선이다.

고려의 불교 — 의천과 지눌

고려는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보호했다. 팔만대장경(1236~1251)은 몽골 침입에 맞서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 호국 불교의 상징이다. 사상가로는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는 천태종을 창시했다(국청사). 송·요·일본에서 경전을 수집해 「속장경」을 간행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는 조계종을 세우고, '돈오점수(頓悟漸修)'·'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다(송광사).

팔만대장경
해인사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 1236~1251년 몽골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강화도에서 16년에 걸쳐 새긴 8만 1,258매의 경판.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한역 대장경이다.
출처 · 국보 제32호·세계기록유산 · Wikimedia (CC BY-SA)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1455)보다 78년 앞섰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출처 · 세계기록유산 · Wikimedia (PD)

조선 — 억불숭유와 불교의 잔존

조선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폈다. 사찰의 토지·노비를 몰수하고 도첩제로 출가를 제한했다. 그러나 ① 왕실 여성들의 후원(세조의 원각사), ② 임진왜란 시 승병의 활약(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 ③ 산중 사찰의 명맥은 끊이지 않았다. 불교는 정치 무대에서 물러났지만, 민중의 종교적 갈증을 채워 주는 역할은 계속했다.

유교·성리학 — 통치 이념의 변천

유교는 일찍부터 한반도에 들어왔지만, 지배 이념으로 자리잡은 것은 시간이 걸렸다. 신라의 국학, 고려의 성균관, 조선의 성리학에 이르러 비로소 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사상이 되었다.

고대 — 유교의 도입

고구려는 372년 태학을 설립하고, 백제는 5경박사를 두었다. 신라는 신문왕 때 국학(682)을 설립해 유교 경전을 교수했고,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788)로 시험을 통한 관리 선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골품제의 제약으로 유교 이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고려 — 과거제와 사학의 융성

고려는 광종 때 과거제(958)를 도입해 유교 경전 시험으로 관리를 뽑았고, 성종 때 국자감을 설치(992)했다. 11세기 최충(984~1068)의 9재학당을 비롯해 사학 12도가 융성해 사립 교육이 발달했다. 무신 집권기 이후 잠시 위축되었다가, 충렬왕 때 안향(1243~1306)이 원에서 성리학을 들여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색·정몽주·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사상적 무기로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조선 — 성리학의 정착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은 「조선경국전」·「불씨잡변」 등을 통해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정립했다. 15세기에는 관학파(훈구)가, 16세기에는 사림이 등장해 정치를 주도했다. 사림의 사상적 정점에 선 두 인물이 퇴계 이황(1501~1570)율곡 이이(1536~1584)이다.

이황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이(理)의 우위를 강조했다. 도덕 원리(이)와 물질(기)을 엄격히 구분하고, 인간이 도덕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학십도」를 지어 군주 교육에 힘썼고, 도산서원의 학풍은 영남학파를 형성했다. 이이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가까워 이와 기의 조화를 주장했다. 현실 개혁에 적극적이어서 「성학집요」·「동호문답」 등을 통해 정치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의 학풍은 기호학파를 형성했다.

사료 · 이황과 이이
"천하의 사물에는 이(理)와 기(氣)가 있으니, ⋯ 사단(四端, 측은·수오·사양·시비)은 이(理)의 발(發)이요, 칠정(七情, 희노애구애오욕)은 기(氣)의 발(發)이다." (이황, 「사단칠정론」)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떨어질 수 없으니, ⋯ 사단도 칠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가 발하면 기가 따르고, 기가 발하면 이가 그것을 탄다." (이이, 「답성호원」)
— 이황·이이의 사단칠정 논쟁
읽기 포인트 — 이황의 '이기호발(理氣互發)'과 이이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은 단순한 형이상학적 논쟁이 아니다. 이는 ① 도덕의 절대성(이황)과 현실의 가변성(이이) 사이의 입장 차이이며, ②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동인과 서인의 정치적 분기로 이어졌다. 철학 논쟁이 정치 노선의 분기점이 된 한국 사상사의 독특한 풍경이다.

예학·실학으로의 분화

17세기 호란 이후 조선 성리학은 예학(禮學)으로 정교화되었다(현종대 예송 논쟁: 1차 1659·2차 1674). 그러나 형식주의에 빠진 성리학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고, 17~18세기 실학(實學)이 새 흐름으로 등장했다.

조선 후기 — 실학·서학·동학

조선 후기는 사상의 분기와 폭발의 시기였다. 성리학의 권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① 내부에서 등장한 실학, ② 외부에서 들어온 서학(천주교), ③ 민중이 만든 동학이 동시에 일어났다.

실학 —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

실학은 ① 경세치용(經世致用) — 토지·세제 개혁 중심의 중농학파(重農派): 유형원·이익·정약용 ② 이용후생(利用厚生) — 상공업·기술 중심의 중상학파(重商派, 북학파): 박지원·박제가·홍대용 ③ 실사구시(實事求是) — 고증을 통한 국학: 김정희·안정복·정약용으로 분류된다.

특히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는다. 「목민심서」(지방관의 윤리), 「경세유표」(국가 제도 개혁), 「흠흠신서」(형정 개혁)의 1표 2서를 비롯해 500여 권을 저술했다. 토지 제도로는 여전제(閭田制)—마을 단위 공동 경작·노동량에 따른 분배—와 정전제(井田制)를 구상했다. 그의 사상은 근대성과 전통성을 함께 지닌 한국 사상의 정점이다.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박제가(1750~1805)의 「북학의」는 청의 신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북학론을 폈다. 박제가는 "수레와 배를 늘리면 상업이 번성하고, 상업이 번성하면 민생이 풍요로워진다"고 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지전설(地轉說)무한우주설을 폈는데, 이는 중화 중심의 세계관을 흔드는 사상적 도전이었다.

서학 —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서학(西學)은 17세기 청에 다녀온 사신단을 통해 한역 서학서의 형태로 처음 들어왔다.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알레니의 「직방외기」 등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학문으로 연구되었으나, 18세기 후반 이승훈이 1784년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평등 사상·조상 제사 거부 등이 성리학적 사회 질서와 충돌하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유박해(1801)로 정약종이 순교하고 정약전·정약용 형제가 유배되었으며, 병인박해(1866)에서는 8천여 명이 처형되었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신자는 늘었다.

동학 — 민중의 종교

1860년 경주 출신 최제우(1824~1864)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서학(천주교)'에 맞서 '동학'이라 명명되었다. 핵심 사상은 인내천(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이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본 이 사상은 신분제가 동요하던 19세기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정부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최제우를 처형(1864)했으나, 2대 교주 최시형이 교리와 조직을 정비하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이어졌다.

사료 · 동학의 인내천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니, 사람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 천지를 알지 못하면 귀신을 알지 못하고, 귀신을 알지 못하면 도(道)를 알지 못하니라. ⋯ 사람이 곧 하늘이라.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事人如天)."
— 최제우, 『동경대전(東經大全)』 / 최시형의 어록 종합
읽기 포인트 —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종교적 차원에서 선언한 것이다. 양반·상민·노비의 구분 없이 모두 하늘의 화신이라는 가르침은, 19세기 흔들리던 신분제 속에서 민중의 자존감을 일깨웠다. 동학 농민 운동(1894)의 폐정 개혁안에 노비 문서 소각·과부의 재가 허용 등이 들어 있는 배경이다.

문화의 발전 — 인쇄·도자기·한글

사상이 정신의 영역이라면, 문화는 그 정신이 형상화된 것이다. 한국의 전근대 문화는 인쇄술·도자기·한글이라는 세 정점에서 세계사적 기여를 했다.

인쇄술 — 직지심체요절의 자부심

고려는 세계 인쇄 문화사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① 무구정광대다라니경(8C, 신라)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 ② 팔만대장경(1236~1251)은 8만 1,258매의 거대 목판. ③ 『직지심체요절』(1377)은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구텐베르크 성서(1455)보다 78년 앞섰다. 조선에서도 계미자(1403)·갑인자(1434) 등 금속활자가 발달했다.

도자기 —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도자기는 한국 문화의 정수다. ① 고려는 12세기 고려청자를 완성했다. 비취 빛깔의 비색(翡色)과 상감(象嵌) 기법—파낸 자리에 다른 색 흙을 채워 무늬를 만드는 기술—은 세계 도자기사의 걸작. 송 사신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려청자의 비색을 극찬했다. ② 조선은 분청사기(15C)와 백자(16C 이후)로 옮겨갔다. 백자의 순수한 흰빛은 조선 사대부의 청렴한 미의식을 반영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 아리타·하기·사쓰마 도자기의 시조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글 — 1443년의 혁명

세종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국 문화사 최대의 사건이다. 28자(현재 24자)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표음 문자이자,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과학적 문자.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사료 ·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훈민정음』 어제 서문 (1446)
읽기 포인트 —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뜻을 글로 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여 한글을 만들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는 단순한 문자 창제가 아니라 '문해(文解)의 평등'이라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양반들이 한글을 '암클'·'언문'으로 천시했음에도 한글은 점차 확산되어, 조선 후기에는 소설(춘향전·홍길동전)과 가사 문학의 매체가 되었고, 마침내 근대의 보편 문자로 자리 잡았다.
INTERACTIVE · 사상의 가계도

한국 전통 사상의 흐름

노드를 눌러 각 사상의 분기와 인물·국제 교류를 탐색하세요

불교 전래 (4C) 통일신라 불교 원효·의상 교종 (5교) 경전 중심 선종 (9산) 참선 중심 의천·천태종 교→선 통합 지눌·조계종 선→교 통합 조선 억불숭유 산중 사찰 잔존 유교 도입 (4C) 신라 국학 고려 과거제 성리학 수용 안향·정몽주·정도전 퇴계 이황 이의 우위·영남 율곡 이이 이기 조화·기호 예학·예송 17C 형식화 조선후기 사상 분기 실학 (중농) 유형원·이익·정약용 실학 (중상) 박지원·박제가·홍대용 서학 (천주교) 1784 이승훈 세례 정약용 목민·경세·흠흠 북학론 청 문물 수용 신유박해 1801 정약종 순교 동학 (1860) 최제우 · 인내천 동학 농민 운동 1894
불교 유교·성리학 실학·서학 동학

비교와 적용

▶ 한국 사상의 흐름 — 5단계
4C~6C
불교 전래
7~10C
교종·선종
11~13C
의천·지눌
14~17C
성리학
17~19C
실학·서학·동학
단계를 클릭해 보세요.
DEBATE · 두 입장이 부딪치다
성리학 — 조선의 도덕적 기둥인가, 변화를 막은 굴레인가?
긍정론
  • 유교적 도덕 사회의 기반 — 효·충·의
  • 500년 왕조 안정의 사상적 동력
  • 이황·이이의 정밀한 철학적 깊이
  • 향약·서원을 통한 자치 문화 형성
VS
비판론
  • 예학에 치우쳐 현실 외면
  • 붕당 정치·당쟁의 사상적 토양
  • 실학·과학·기술의 발전을 억압
  • 여성·노비·평민의 차별 정당화
📖 더 깊이 — 동학 창시의 시대적 배경

동학(東學)은 1860년 경주의 몰락 양반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다. 서학(西學, 천주교)의 확산과 외세 침입의 위협 앞에서, "서학에 맞서는 동방의 학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事人如事天). ⋯ 후천 개벽(後天開闢)의 시대가 온다."
— 최제우, 『동경대전』· 「용담유사」 종합

'인내천' 사상은 신분제 사회에서 모든 인간이 하늘과 같이 존엄하다는 혁명적 선언이었다. 최제우는 1864년 처형되었으나, 그의 사상은 2대 교주 최시형을 거쳐 동학농민운동(1894)으로 폭발한다.

MINI GAME · 시간 여행
사상사 결정적 순간 — 시간 순으로 배열
아래 6개의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클릭하세요. 정답을 모두 맞히면 도장이 찍힙니다.
0 / 6
MINI GAME · 인물·사상 매칭
인물과 사상·저술을 짝지어 보세요
왼쪽에서 인물을 한 명 고른 뒤, 오른쪽에서 사상·저술을 클릭하세요.
인물
원효
의천
지눌
이황
정약용
사상·저술
주리론, 『성학십도』
천태종 · 교관겸수
실학, 『목민심서』
화쟁 사상, 일심
조계종 · 정혜쌍수
맞힌 짝 · 0 / 5

사상의 시대별 비교표

시대지배 사상주요 인물국제 교류
고대불교 (왕즉불)원효·의상·혜초중국 남북조·당의 경전 / 인도 구법(혜초)
고려불교 (호국) + 유교 (과거)의천·지눌 / 최충·안향송과 천태종 교류 / 원에서 성리학
조선 전기성리학 (억불숭유)정도전·이황·이이명의 성리학 수용 / 사단칠정 논쟁
조선 후기실학·서학·동학정약용·박지원·최제우청 사신단으로 서학·서양 천문 / 동학은 토착
CHECK · 사료 해석 ①
다음 자료의 사상가와 그 주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모든 경(經)이 곧 한 부처의 말씀이요, 부처의 말씀이 곧 한 마음(一心)이라. 어찌 종파에 막힘이 있겠는가."
— 『대승기신론소』
해설 —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은 원효의 핵심 사상이다. 여러 종파의 대립을 한마음의 차원에서 화해시키려는 그의 사상은, 통일 신라의 사회 통합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 원효는 또한 무애가를 부르며 불교를 대중화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CHECK · 사료 해석 ②
다음 자료의 사상이 끼친 사회적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人乃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事人如天)."
— 최시형, 동학 어록
해설 —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종교적으로 선언했다. 양반·상민·노비의 구분 없이 모두 하늘이라는 가르침은 신분제가 흔들리던 19세기 민중의 호응을 얻었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EXPLORE · 탐구해 봅시다

사상으로 던지는 질문

思想 마스터
"원효부터 동학까지, 한국 사상사의 큰 흐름을 잡았습니다."
다음 단원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어요.